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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岩과 智庵의 護法 觀

  • 주제漢岩과 智庵의 護法 觀
  • 시대1900년대
  • 저자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학술연구교수)
목차
위로 가기 漢岩과 智庵의 護法 觀
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학술연구교수
Ⅰ. 緖言
Ⅱ. 漢岩의 還歸本源的 護法
Ⅲ. 智庵의 立廛垂手的 護佛
Ⅳ. 結語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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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漢岩, 1876~1951)1)과 지암(智庵, 1884~1969)2)은 같은 시대, 같은 무 대를 중심으로 불교를 한 근대 한국불교의 종장(宗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평가는 적지 않게 차이가 있다. 수선 정진하며 정법으로 후학을 인도 하며 불교를 지켜 나간 한암에 대해서는 근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사(禪師)라 고 수용되고 있지만, 탁월한 능력으로 사찰 보전과 종단 건립에 혁혁한 공로를 갖춘 지암에 대해서는 평가가 인색하거나 부정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 두 종장의 관계에 대해 “지암과 한암은 일제 식민지시대에 한국불교계의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을 대표하는 스님들이었다. 편의상 이판과 사판으로 구 분되는 소임에 평생을 바쳤지만, 두 스님 모두 이사무애(理事無碍)하여 이판과사판의 영역을 상호 존중하고 협력하여 가람을 수호하고 교단을 재건하여 운영할 수 있었다./ 일제시대 조계종 재건과 조계사 창건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데에는 한암과 지암의 수행력과 신심이 밑바탕이 되었다. 두 수행자는 이미 월정사 구사 운동과 평소 오대산 산중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돈독한 신뢰를 형성하여 상호 검증된 관계였다.”라고 역할적인 측면으로 논의되었었다. 수선(修禪)을 중심으로 교학과 계율을 실천한 한암의 삶은 불변(不變)의 향상 문적(向上門的)이고; 전통 승가교육, 독립운동, 사찰 안정, 교단 건립에 진력한 지암의 삶은 수연(隨緣)의 향하문적(向下門的)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이 관 점으로 보면, 두 종장의 이력은 ‘호법’(護法)과 호불’(護佛)의 과정이라고 읽혀질 수 있는 개연성이 짙게 드리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호법’과 ‘호불’의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왜인가. 그간 두 개념의 경전적 의미와 현실적인 이해에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호불’하면 불교를 보호하거나 수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호불’의 ‘호’가 ‘수호’의 의미라면 ‘호’의 주체는 내부자가 되고, ‘보호’의 의미이면 ‘호’의 주체는 외부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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