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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성우 법맥의 재검토
- 주제경허성우 법맥의 재검토
- 시대1890년대
- 저자김창숙(효탄)ㆍ 전 동국대학교 불교대 및 사범대 역사교육과 강사
목차
위로 가기 경허성우 법맥의 재검토김창숙(효탄)ㆍ
전 동국대학교 불교대 및 사범대 역사교육과 강사
Ⅰ. 머리말
Ⅱ. 경허 법맥의 재검토
1. 선가에서 법맥의 의미
2. 경허 법맥에 대한 재검토
1) 제 설의 검토
2) 연구 발표의 검토
3. 「등등상속」과
상세소개
위로 가기경허선사는 최근세에 선을 크게 중흥한 이로 평가받는가 하면, 선불교 를 한국불교의 정통으로 보는 이들에게서 ‘한국 선불교의 부흥조’로 평가받 기도 한다. 선사가 살던 시대는 폭풍노도의 시대로 대내외적으로 국가의 안위가 위태롭고 불교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개혁을 함 께 이루어내야 하는 큰 실험을 맞이한 시기였다. 경허선사는 34세(1879)에 간화선 참구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한국 祖師禪 수행의 전통을 되살려내었 다. 그 결과 선․교․정토 등이 혼재한 한국불교에 있어 선불교 수행의 전통 을 지켜낼 수 있다 하겠다. 그러한 경허는 스스로 자신의 법의 계승을 밝 히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간절한 佛祖慧命의 전승에 대한 강렬한 염원이 있 었기 때문이다.1 선사는 깨달음 이후 주로 호서지방에서 머물면서 제자들 을 제접하였으며, 1899년 범어사․해인사로 자리를 옮기면서부터 의욕적으 로 선풍을 드날리며 피폐해 있던 선원을 재건하는데 앞장섰다. 이를 계기 로 이후 한국불교는 祖師禪·看話禪 수행의 전통을 새로 일으켜 세웠으며, 훌륭한 제자들을 키워냄은 뒷날 일제에 대항하는 선학원 건립과 조계종의 건립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이것은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천명하고 선불교 의 재건을 확립하는 등 한국 불교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것이라고 평 가된다. 그런가하면 그의 ‘異類衆生의 行化’는 많은 일화를 낳으며 사람들 에게 깨우침을 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지금까지도 시비의 논란을 일으키 며 회자되고 있을 정도이다. 이렇게 ‘한국 전통선의 중흥자’로 인정받는 경허의 법맥은 그 법계상 승을 淸虛 하 11세손, 喚惺 하 7세손이 주장된 이래, 청허 하 12세손, 환성 하 8세손, 그리고 청허 하 13세, 환성 하 9세손 등,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본고에서는 그간에 논의되어왔던 법계와 그 이후 왜 13세손이 대두되어 갔 는지 살피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존에 발표된 법맥 관련 자료와 연 구논문을 검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