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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탑돌이의 전승과 무형문화재적 가치
- 주제2016_탑돌이토론회자료집
- 시대현대시대
- 저자장정룡(강릉원주대 교수)
목차
위로 가기 월정사 탑돌이의 전승과 무형문화재적 가치장정룡(강릉원주대 교수)
1. 머리말
2. 월정사탑돌이의 민속예술경연 출연현황
3. 월정사 탑돌이의 전승양상과 문화유산적 가치
4. 오대산사적록과 오대산유산록 자료
5. 맺음말
상세소개
위로 가기본고는 월정사 탑돌이와 관련한 전승양상과 무형문화재적 의미와 가치를 논한 글이다. 주지하듯이 오대산 월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로서 해동불교 문수도량의 성지로서 약 1,300여 년 전, 7세기경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중기 승려 일연(一然, 1206~1289)이 지은『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이 산은 백두산의 큰 산맥이라 각 대에 진신이 상주하는 땅이 가장 좋은 땅”42)이라고 하였다. 오대산 월정사에는 자장율사 이후 많은 고승대덕이 머물러 큰 절이 되었다고 하는바, “이 월정사는 자장법사가 처음으로 초암을 지었고 다음에는 신효거사가 와있었고, 그 다음에는 범일의 문인 신의두타가 와서 암자를 짓고 있었다. 그 후로는 수다사 장로 유연이 와서 있었으며 점차 큰 절이 되었으니 이 절의 오류성중과 9층석탑은 모두 성적이다. 지리를 아는 자의 말이 국내에 있는 명산 중에 이곳이 제일 훌륭한 명승지로 불법이 길게 일어날 곳이라 하였다”43)고 하였다. “두타신의는 범일의 문인으로서 이 산을 찾아 자장법사가 휴식하던 곳을 찾아 암자를 세우고 살았으나 신의가 죽은 후에는 암자도 역시 오랫동안 헐었는데, 수다사의 장로 유연이 새로 암자를 짓고 살았으니 지금의 월정사가 바로 이것이다”44)라고 했듯이 오대산 월정사는 명산승지로서 진신(眞身)이 상주하며 자장, 신효, 신의두타, 유연 등 고승들이 자취를 남기면서 불법이 계속 흥하여 명찰(名刹)로서 자리매김했다. 월정사가 자리한 오대산에는 한강시원지인 우통수와 천년 전나무숲길, 한국 기록문화의 중심지로서 한글필사본인 국보 292호 상원사중창권선문, 풍수화(風水火) 삼재와 병화가 들지 않는 명당 터이기에 조선왕조실록과 의궤를 보관한 오대산사고가 있는 곳이며45) 많은 불교관련 판본 등의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인 국보 36호 상원사동종,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조각으로 국보 22호인 상원사문수동자상 등이 있다. 특히 월정사 탑돌이가 봉행되는 공간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형미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국보 48호 월정사 8각9층 석탑의 성적(聖跡)이 있는 곳이다. 고려시대에 세워진 이 탑은 우리나라의 팔각석탑으로는 가장 크고 높으며, 대부분 평면이 사각인 불탑인데 비해 8각이고, 층수도 9층이라는 점에서 여러 모로 주목된다. 이 같은 8 각9층 석탑은 고구려 계통의 문화가 오대산을 중심으로 부활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전국의 많은 사찰이 있으나 오대산 월정사에는 국보와 보물 등 많은 불교문화재가 집중되어 있는 곳은 사실상 드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정사 탑돌이는 지난 1977년 8월 20일 개최된 제1회 평창군 향토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이어서 1977년 9월 23일 강원도에서 개최한 제1회 태백문화제에 출연하여 세상에 선보였다. 이는 옛 월정사에서 행해지던 탑돌이는 발굴하여 원형에 맞게 재현한 것이다. 이어서 제1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수원, 1977.10.24.~26)에 출연하였고, 1978년 10월 13 일 노성제와 2004년 제1회 오대산불교문화축전에서 월정사탑돌이를 봉행하였다. 1992년에 개최된 제10회 강원도 민속예술경연대회(강릉, 1992.9.3.~4)에서도 평창군을 대표하여 참가하는 등 그 활동이 지속화되었듯이, 월정사 탑돌이가 강원민속예술로 주목을 받으면서 새롭게 등장한 지도 40여년이 흘렀다. 그간의 연구와 조직상의 추이를 살펴보면, 학술적인 측면에서 2010년과 2012년 자문회의가 개최되었고, 2013년 학술용역이 진행되었으며, 월정사 탑돌이보존회가 결성되고 단체등록을 하는 등 월정사 탑돌이의 가치제고를 위한 다각적인 움직임이 있었다. 우리나라 무형문화재법은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포함되었다가 53년 만에 지난 2015 년 3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독립되었다. 그것은 ‘무형문화재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로서 그 범위가 대폭 확대되었다. 이 법률안의 하위법령 제정 후 올해 3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 법률은 문화재보호법상 기․예능을 중심으로 한정했던 범위에 한의약, 농경․어로 등에 관한 전통지식, 구전전통 및 표현, 의식주 등 전통적 생활관습, 민간신앙 등 사회적 의식(儀式), 전통적 놀이․축제 및 기예․무예가 추가되었다. 본고에서 서술하는 월정사 탑돌이는 무형문화재인 전통불교민속으로서 ‘사회적 의식’의 범주에 들어갈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기존의 전통적 공연․예술과 공예․미술 등에 관한 전통기술 등 7개 범주로 확대가 되어 사투리나 침술․뜸․경락 등 한의술, 구전설화, 명절관습 등도 문화재가 가능성이 열렸다. 이와 같이 무형문화재의 범주가 확대됨에 따라 월정사 탑돌이의 전승과 문화재적 가치제고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확대되고 있다. 월정사 탑돌이가 전승되는 이 사찰과 지역의 유무형문화유산은 유구한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1930년대 무렵 평창군에서 수집한 아리랑 가운데 서두에 ‘월정오대산’으로 시작한 5편이 전승되고 있다.48) 여기서 ‘월정’은 ‘월정사’로 보이기에 민요로도 퍼졌을 것이다. 1906년에 작성된 필사본〈오대산사적록〉에도 “즁국 당나라 시졀의 조션 신나국 효소왕의 신셩과 효명과 형졔분니 옥참차로 오대산의 드러오시니 불보살의 원력으로 산영이 감동하야 두분 왕계옵셔 발심하와 종뎍을 감초고 지극령건하 지셩감쳔와 종종 문슈보살을 친견하며 보살의 삼십뉵변화로 친견고 우통슈을 차을 다려 조셕으로 불보살예 공양하시더라” 고 하였다. 또한〈오대산유산록〉필사본 75)~79)행을 보면 “보주효명 두형제는 신라국의 왕자로서, 금지옥엽 귀한몸이 만첩청산 잡어드러, 청연화가 피는곳에 남북청암 각각짓고, 우통수를 기러다가 문수전에 헌다하니, 문수보살 감동하사 삼십육형 나투셨다”고 하였다. 필자는 평창군의 민속예술의 전승발전과 관련한 글을 썼으며, 특히 월정사탑돌이를 주목하였다.50) 그동안의 둔전평농악, 황병산사냥놀이, 대목장의 무형문화재 지정을 비롯하여 메밀타작소리, 중리농악, 방림삼베삼굿놀이, 미탄아리랑 등 평창군 민속예술을 중시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월정사 탑돌이의 무형문화재적인 가치제고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고 발표한 바 있다.51) 본고는 신라 시대 창건한 이래 고려, 조선조를 이어오면서 그 명성을 잇고 있는 월정사에서 불교민속행사로 탑돌이의 무형문화재적 가치를 중심으로 논하고자 하며, 차제에 월정사의 유구한 역사와 불교문화적 가치를 담고 있는 필사본 〈오대산사적록〉과 〈오대산유산록〉 내용도 공개하고자 한다. 월정사는 한국전쟁 때 사찰이 불에 많이 탔으므로 사료적 측면에서 일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