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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선사 유불회통론의 ‘탄(呑)적 가풍’ 연구

  • 주제유교 중용(中庸)의 미발론(未發論)을 중심으로
  • 시대20세기
  • 저자文 光
목차
위로 가기 탄허선사 유불회통론의 ‘탄(呑)적 가풍’ 연구
유교 중용(中庸)의 미발론(未發論)을 중심으로
文 光
1. 미발(未發)은 불성(佛性)의 이명(異名)
2. “천하무이도 성인무양심(天下無二道 聖人無兩心)”의 유불회통(儒佛會通)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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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 택성(呑虛 宅成, 1913-1983) 선사는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대선사이자 대 강백이자 대석학이었다. 유년시절부터 한학을 수학하고 면암 최익현 선생의 학통을 이어받 은 이극종(李克宗)으로부터 유학의 정통코스를 배워 학교 문턱에도 가지 않고 사서삼경과 주역에 달통했다. 스님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경서들을 수백 독(讀)하여 마음만 먹으면 책 을 통째로 외워댈 수 있었고 기독교 성경까지 한문으로 읽었다고 한다. 20대 초반에 노장(老莊)을 3년간 독학했는데 아무리 파고들어도 해부가 안 되고 선생이 없어서 오대산의 한암(漢巖) 선사와 일면식도 없는 상태에서 3년간 한문 편지를 주고받던 차에 구도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아내에게 잠시 몇 년만 배우고 오겠다고 집을 나선 것이 그대로 입산수도의 길이 되었다고 한다. 22세에 입산하여 상원사 뒷방에서 한암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일대장교의 이력공부를 전등록과 선문염송의 선어록을 포함하여 7년 만에 마치고 나니 노장사상이 저절로 환히 풀어졌다고 한다. 유교와 불교 사이에서 노장학은 자득(自得)이 된 것인데 노장(老莊)의 문 자 밖 소식에 막혀 출가까지 하게 되는 과정에서 스님은 장자를 무려 천 독(讀) 했다고 하는 말이 전해져 온다. 훗날 오대산 수도원에서 함석헌이 장자 강의를 듣고 감복했다는 소문을 들은 자칭 타칭 국보 양주동은 친한 지식인, 학생 20여 명을 데리고 월정사로 와서 일주일간 장자 강의를 듣고는 스님에게 절을 하였다고 한다. 동국대로 돌아온 양주동은 학생들에게 “장자가 다시 돌아와 자신이 쓴 책을 말해도 오대산의 호랑이 탄허는 당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한다.화엄경을 보고 문리(文理)는 모두 해결이 되었으나 심오한 묘의가 해결되지 않자 한암 선사는 참선할 때가 됐다며 화두참선을 권하였으니 그 길로 입선(入禪)하여 공안을 타파하고 대장부 일대사를 해결한다. 이제 책 볼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했으나 화엄경에 현토하여 출판·보급하라는 스승의 부촉을 받았으니 이것이 뒷날 역경불사와 교육불사의 기나긴 여정 의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수행의 과정은 스님이 유(儒)·불(佛)·선(仙) 삼교를 두루 섭렵할 수 있는 좋은 계 기가 되었는데, 입산할 때 가져온 유교경전과 주역, 노장서 등을 상원사에서 열람하는 것 을 한암선사는 제지하지 않았으며, 17년간 사제 간에 치열하게 논강하고 탁마했던 열정이 향후 삼교(三敎)의 본질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할 수 있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 이러한 유·불·선 삼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실참(實參)의 선기(禪機)를 바탕으로 스님은 불교전문강원의 모든 교재들을 번역·출간하게 된다. 그 가운데에도 청담(靑潭) 스님에 의해 한국불교사에서 이차돈 순교 이래 최대불사라는 평을 들었던 현토역해 신화엄경합론(懸吐譯解 新華嚴經合論) 47권의 역경불사는 전무후무 한 대작불사였다. 15년 세월의 각고 끝에 원고지 10여만 장 분량으로 끝낸 이 화엄불사는 화엄경(華嚴經) 80권, 통현장자의 논(論) 40권, 청량국사 소초 150권, 현담 8권,  화엄요해 7권, 보조국사 「원돈성불론」 1권 등을 통합하여 토를 달고 번역·탈고한 화엄학의 집대성으로 혼자 힘으로 이루어 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 어려운 한국문화사에 길이 빛날 금자탑이라 할 만하다. 허나 본인은 ‘하루저녁 푹 잠을 자고난 기분’으로 화엄경을 원고삼 매(原稿三昧) 속에서 써 냈다고 한다. 이러한 선교겸수(禪敎兼修)의 불문(佛門) 수련 바탕위에서 이루어진 문(文)·사(史)·철(哲) 3 학과, 유(儒)·불(佛)·선(仙) 3교의 융회는 묘론(妙論)으로 터져 나왔으니 승속을 가리지 않고 무수한 제자들이 그의 회상에서 배출되었다. 스님은 일생동안 매일 인시(寅時)인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참선수행과 역경하는 것을 철칙 으로 삼았으니 본인의 선필(禪筆)인 “향상일로(向上一路)”를 그대로 대변하는 삶이었다. 탄허선사의 핵심사상은 선지(禪旨)를 바탕으로 한 화엄사상(華嚴思想)이며 여기에 노장(老 莊)의 현지(玄旨)와 역학(易學)의 묘도(妙道)를 양익(兩翼)으로 삼아 사사무애(事事無碍) 도 리로 회통한 것이라 하겠다. 특히 역학에 밝아 지욱(智旭) 선사의 주역선해(周易禪解)와 김일부의 정역(正易)에도 정통하여 일생동안 굵직한 예언들을 수차례 적중시켜 세상을 놀 라게도 했었다. 논자 역시 탄허선사의 저술을 사숙(私淑)하면서 많은 영감들을 받았고, 풀리지 않는 많은 의문거리들과 유·불·선 삼교의 대지(大旨)를 확립하는데 큰 빚을 진 바 있다. 만약 현존에계신다면 언제든지 회상으로 달려가서 배울 마음 가득하나 그러하지 못한 한(恨)을 단지 문 자법신(文字法身)과 만나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스님의 사상체계와 학문세계, 그리고 수 행이력에 비추어 볼 때 아직 그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미진해 보인다. 그의 방대한 저술과 법시(法施)에 걸맞은 학계의 마땅한 응대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단행본 몇 권이 보이 기는 하지만 아직도 스님을 대상으로 한 전문적인 석·박사 학위논문이 전무한 형편이어서 미약하나마 본고가 스님의 법호가 들어간 최초의 학위논문이 될 듯하다. 스님 1인만을 논한 전문적인 논문이 아니어서 이 역시 미진하기 이를 때 없지만 시작된 것으로 그저 자족(自 足)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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