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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미학과 행동적 수양주의

  • 주제깨달음의 미학과 행동적 수양주의
  • 시대1910년
  • 저자고 재 석 (동국대학교 교수)
목차
위로 가기 깨달음의 미학과 행동적 수양주의
고 재 석
(동국대학교 교수)
1. 글자 없는 책과 글자 있는 책
2. 정선강의 채근담과 행동적 수양주의
3. 유심과 깨달음의 미학
4. 어둠 속의 꽃과 역사의 문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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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의 문학과 삶에 대한 논의는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아니, 그의 삶과 문학을 살펴보려는 의욕의 발걸음은 앞으로도 쉽게 멈추지않을 듯하다. ‘혁명가와 선승과 시인의 일체화.’ 여기에 한용운의진면목이있다고 했던 조지훈의 평가는 여전히 화두로 남아 있는 셈이다. 그러나혹시 이런 그칠 줄 모르는 관심과 열기는 과거 청산이야말로살아남은자의 엄숙한 도리이며 후손을 위한 의무라고 외치는 우리의 무모한정결의식 또는 그의 삶과 문학을 우리의 정체성을 위한 하나의 문화기억으로 만들려는 집요한 확인 심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그 동안 승려취처에 관한 헌의서(1910.3)와 건백서(19010.9)를제출하면서 일으킨 ‘물의’의 이면에는 당시의 시대적 요청으로 공감대를형성하고있던 인구증산론이 가로놓여 있으며, “한일불교동맹 조약을 분쇄”했다고평가되었던 임제종운동(1911~12)도 총독부라는 현실 앞에서 무력할수밖에 없었던 운동에 다름 아님을 살펴보았다. 또 평소 서화를배척하던그가 오세창을 방문하여 1,291인의 고서화를 배관하고 새로운 역사인식을 확보하고 1910년대 지식인 사회의 중심에 서게 되는 과정을통해이런 의문을 다시 한번 확인한 바 있다. 물론 자기가 살아보지 않은 시대의 역사를 상상하기란 어려운일이며불가능한 과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청산에 대한 강박 증세를떨쳐내지 못하고 거대 담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오늘, 우리는 그럴수록주어진 기록을 중심으로 당시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배가할 필요가있다. 그간 한용운을 둘러싼 여러 풍문과 오해는 실증적 자료 특히1910년대의 기록을 세밀하게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임을부인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글자가 있는 책을 읽을 줄은 알되 글자가없는책을 읽을 줄 모른다.”는 경계의 말도 있지만 정선강의 채근담(1917)과 유심(1918), 그리고 그의 근황을 알려주는 기사들을 중심으로그가3.1독립운동에 불교계를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 참여하기까지의 과정을재구성하고 그가 표방한 행동적 수양주의의 성격을 분석하려는 것은한용운의 문학과 삶에 대한 논의가 더 이상 자기 위안을 위한 동상만들기나대중에 의해 소비되는 기억의 재구성 작업으로 변질되어서는 안된다는생각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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