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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實錄의 刊行·收藏과 朝鮮 유입

  • 주제明實錄의 刊行·收藏과 朝鮮 유입
  • 시대현대시대
  • 저자동국대 서인범
목차
위로 가기 明實錄의 刊行·收藏과 朝鮮 유입
동국대 서인범
Ⅰ. 머리말
Ⅱ. 명실록 찬수 과정
1. 纂修官의 임명
2. 사료 수집과 초고 작성
3. 上進
Ⅲ. 명실록 御覽本의 출현
1. 小型 御覽本의 제작
2. 大本-內府 舊本의 복제본
Ⅳ. 明實錄의 收藏處, 內府와 皇史宬
1. 명조의 실록 수장처, 皇史宬
2. 조선왕조실록 수장처, 五臺山史庫
Ⅴ. 명실록의 조선 유입
Ⅵ. 맺음말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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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역사상에 있어 實錄은 황제 재위 기간 중에 벌어진 사건 등을 연대순으로 서술한 기 록물이다. 일찍이 魏晉南北朝시대(220~589)부터 실록 편찬이 시작되었고, 唐·宋代에 이르러 실록의 체제나 纂修 제도가 갖추어졌다. 황제의 存沒이나 언행을 기록한 起居注나 日曆, 황제의 조칙과 율령, 조정의 각 아문에서 올린 章奏, 황제의 批答 등을 기본 사료로 이용하여 실록이 편찬되었다. 그 안에는 정치·경제·사회·군사·문화 등에 관련된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당시대를 연구하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중국 역대 왕조 중에서 梁代(502~557)에 武帝實錄의 편찬 사실이 알려져 있는 외에, 唐 代(618~907)의 順宗實錄, 北宋(960~1279)의 太宗實錄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왕조 전체 를 기록한 것 중 온존하게 남아 있는 것은 明實錄과 淸實錄이 유일하다. 명실록은 총 2,909권에 1,600여 만 자에 달하는 거대한 분량으로 이루어졌다. 明朝는 이전 왕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실록을 편찬하였다. 전임 황제가 죽으면 후임 황제가 祖宗의 옛 제도나 纂修 사례를 본받아 각 아문에 보관하고 있던 사료나 지방의 문헌 등을 수 집 편찬하였다. 그 결과 太祖實錄부터 熹宗實錄까지 13王朝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읽어 낼 수 있다. 명실록에서 다루는 기간은 元 順帝 至正 12년(1352)년부터 천계 7년(1627) 8 월까지의 275년간이다. 아쉬운 점은 명조의 마지막 황제인 崇禎帝(1628~1644)의 실록은 淸 초에 간행되었으며, 그것도 불완전한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명실록은 궁궐 秘閣에 소장되어 있어 관료들조차도 열람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명 말 雕 版이 성행했던 시기에도 실록은 간행되지 않아, 단지 일부 관료들 사이에서만 몰래 抄寫되어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마침내 傳抄本이 명말 청초에 이르러 각지에 전파되게 된다. 현재 명실록은 중국을 필두로, 대만·일본·미국·영국 등의 국가에 抄本이 보존되어 있다. 1941년 福建 長樂縣 출신 梁鴻志(1882~1946)는 江蘇省立國學圖書館 소장 명실록 판본을 영인하였다. 이른바 명실록 인쇄본의 등장이다. 1930년부터 1962년 사이에 대만 中央硏究 員 歷史語言硏究所(이하 중앙연구원으로 약칭)는 國立北平圖書館 소장의 紅格鈔本 명실록 의 대규모 정리 및 교감을 실시하여 출판하였는데 현재 명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구입해서 이용하고 있는 그 판본이다. 이렇게 명실록이 인쇄본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명실록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 로 시작되었다. 중국과 일본학자들은 명실록의 정리 및 고증, 판본, 각 왕조의 명실록 분 석, 사료의 가치 등 다양한 측면으로부터 연구를 진행하였다. 반면 한국학자들은 명실록 중의 조선 관계 사료를 발췌하여 한중관계사를 밝혀내려는 논 문을 계속 발표하고 있으나, 명실록이 조선에 언제 유입되었는지? 그 판본은 언제, 누구에 의해서 전래되었는지, 만약 전래되었다면 그 판본의 수장처는 어느 곳인지 등에 대해서는 관 심을 표명하고 있지 않다. 필자는 1930년대 초 일본학자 小田省吾가 순조 30년(1830)에 명실록이 조선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언급한 논문을 대하였다. 명실록 수장처인 皇史宬의 건립 과정과 건물 구조 등에 대해서는 이미 훌륭한 연구 성 과가 발표되어 있다. 한편 조선 태조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472년간의 기록을 1,187책 6,400만 자로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에 대해서도 뛰어난 연구 업적이 지면으로 공간되어 있는 실정이다. 특히 조선시대 外史庫 중의 한 곳인 五臺山史庫의 보관 문제에 대해서도 이미 몇 편의 專論이 발표된 상태이다.본고는 오대산사고의 문제를 다루는 특별 기획의 일환으로 준비된 탓에 여타 오대산 사고를 다룬 논문들과의 형평성을 맞출 필요에 의해 한 절을 배분하여 서술하였다. 이러한 의도 하에 서 황사성과 오대산사고를 비교하여 한중 관계사의 시점에서도 다루고자 한다. 아울러 명실록이 조선에 유입되는 과정을 다루는 동시에,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명실록의 수장 실태 를 통해 드러나는 조선 조정의 중국관도 엿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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