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 숭배의 발달과 그 고원성 > 학술자료실

화엄선 연구소 소개

오대산 역대 선지식

학술 자료실

특별강연자료실


학술자료실

학술자료실


본문

사리 숭배의 발달과 그 고원성

  • 주제오대산 적멸보궁과 사라신앙의 재조명
  • 시대현대시대
  • 저자원혜영(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박사후과정)
목차
위로 가기 사리 숭배의 발달과 그 고원성
-사리 정의와 숭배에 관한 연원을 추적하며-
원혜영(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박사후과정)
Ⅰ. 사리 정의와 숭배의 역사
Ⅱ. 사리 숭배에 관련된 성스러운 신세계
Ⅲ. 무불상의 상징과 스뚜빠의 위상
Ⅳ. 불상의 데뷔, 출현, 새로운 시작

상세소개
위로 가기

사리 숭배를 고원함이라 규정하는 것은 지역과 역사적인 상황에 따른 수많은 차이에도 불구 하고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기반을 가지고 불교 안에서 효과적인 형태로 그 명맥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사리 숭배 및 공양에 대한 수요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언제 어디서나 대규모의 장엄한 모습으로 공동체나 개인에게 복덕을 내릴 수 있다는 명목 아래서, 그 우주적이고 존 재론적인 기능을 가진 채 구현되었다. 우리는 그 성스러운 존재에 관해서 언제부터 주목하 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그 우주적이고 존재론적인 구현은 불교 문헌에서 어떻게 재현되었을 까? 사리 숭배는 그 공양물을 받는 주체로서 지상에 재현되는 헌신적이고 신비적인 신앙에서 비 롯된 것이다. 성스럽고 장엄한 과정들은 붓다의 열반 이후, 창조적인 활동으로 부여되면서 성장하고 대중들을 자극하였다. 붓다 사리에 숭배하고 공양하고 존경을 표하는 일련의 행동 들은 시주자의 공덕을 향상시키고 그들을 구제한다는 목적으로 믿어졌다. 사리(sarīra)는 “신체적 구조인 살아있는 몸과 죽은 몸 모두를 의미 한다”는 경전의 기술이 존재하지만, 초기 열반경(Mahāparinibbāna-suttanta) 텍스트에서는 붓다의 사리에 공양하는 과정들로 인하여, 불교 전반에서 사리는 붓다의 유골로 인식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양(pūjā) 또는 숭배란 ‘열반한 붓다와 그 제자들이 집착을 떠나 청량해짐 으로 인해 평화를 얻었고 그들에게 올리는 공경, 예식'등 이다. 여래가 살아있을 때나 돌 아가셨을 때, 향, 꽃, 의복, 음식, 깃발 등을 가진 사람들이 여래를 숭배하여 무한한 공덕을 얻는다. 살아있는 존재에게도 이 숭배와 공양은 가능하지만,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들과 동일시되는 스뚜빠의 건립이 그것을 대신한다. 초기 텍스트에서 규정하고 있듯이, 스뚜빠를 세울 수 있는 성인들은 '붓다와 그의 제자들인 성문, 그리고 연각, 전륜성왕'으로 한정한다. 그들의 강렬하고 순수한 정신성, 우월성을 드러내는 작업이 스뚜빠의 건립이다. 스뚜빠는 열반을 상징한다. 붓다의 유골을 안치해서 그 위에 벽돌이나 돌을 반구 형태로 쌓 아올린 것을 ‘스뚜빠(stūpa)’라고 한다. 반구형의 돔은 ‘알(aṇḍa) 또는 자궁(garbha)’을 상 징한다. 알이나 자궁은 베다시대 이래 인도 신화에서 시원적 형상으로, 또 풍요의 상징으로 쓰였다. 인도에서는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가 오랜 암흑의 시간을 지나 새로운 세계가 다 시 생겨날 무렵, 출렁이는 어둠의 물 위에 홀연히 빛을 발하며 떠다니는 금빛 알이 있다’며 창조신화에서 나옴직한 익숙한 광경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징은 불교 스뚜빠의 돔에 도 투영되었다.스뚜빠의 돔을 동아시아에서는 엎어진 발우 같다고 하여 覆鉢이라 부르는 데 이런 용어는 인도에서도 알려져 있다. 스뚜빠의 숭배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기원전 3세기 아쇼까(Aśoka)왕 때이다. 산치 (Sāñcī) 대탑이 만들어진 것도 아쇼까가 만든 것이다. 아쇼까는 통치책의 일환으로 불교를 이용하면서 스뚜빠 숭배를 처음으로 확립한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아쇼까는 그의영토 전역에 있는 주요 도시에 스뚜빠를 세우고 붓다의 유골을 나누어 그곳에 봉안하였다. 붓다의 유골에 신통한 영험이 있었을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숭배는 불교도들로 하여금 붓다 의 유해에 귀의와 경배를 바침으로 오래전에 열반의 세계로 사라진 붓다의 실재성을 믿게끔 하였다. 스뚜빠 자체가 붓다의 외적인, 그리고 시각적인 현현물들로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왕들에게 쓰이던 봉본에 붓다의 유골을 봉안함으로 인해 아쇼까는 붓다가 곧 전륜성왕, 즉 세계의 제왕이라는 관념을 퍼뜨렸다.스뚜빠 주위를 태양의 방향, 다시 말해서 시계 방향으 로 돌며 경배하는 모습은 확고한 관습에 의한 것이다. 숭배와 공양의 역사는 붓다에 의해서 주목받았고 열반 당시에 유해에 가해지며 상징적인 건 축물이 되었다. 붓다의 열반에 관련된 이야기와 불교 미술품 등에서 보인 섬세함은 사리 숭 배에 관련된 분석을 명쾌하게 하는 틀을 제공한다. 초기 열반경 텍스트에서 보인 붓다의 이 야기는 집중력 있게 불교미술에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야기와 건축물, 그리고 미술의 독 자성이 사리 숭배라는 공양의례에 적절하게 이해시킨다. 이국적일 수도 있고 이질감 있는 인도 문화의 시각적 양상은 다시 말해서, 사리 숭배라는 의례를 붓다의 열반이라는 상황과 맞물려 극적으로 받아들이기 한다. 그래서 특유한 문화적 상황이나 역사적 상황이 초기불교 텍스트와 무관하지 않음을 인지하게 하여 자연스럽게 흡수시킨다. 특히 붓다 자신도 살아있을 때, 스뚜빠의 아름다움에 대해 피력한 내용은 불교 전통의 틀 안에서 우리에게 이야기와 건축물, 또는 미술품들을 대함에 흥미로움을 일으킨다. 또한 감 탄하는 붓다의 말 속에서 우리는 스뚜빠에 더욱 주목하게 됨을 발견한다. 스뚜빠는 붓다의 사리를 모신 상징성으로 유명하지만 이전부터 존재했던 인공물이다. 탑묘(cetiya)는 스뚜 빠의 다른 형태의 이름으로 존재하는데, 과거불을 숭배하는 탑묘를 보기 위해 붓다는 열반 직전에 아난다를 대동한다. 


첨부파일


대표 : 퇴우 정념스님 주소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374-8 전화 : 033-339-6800 / 팩스:033-332-6915
COPYRIGHT © 화엄선연구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