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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기 외사고의 변천과 오대산사고
- 주제조선 시기 외사고의 변천과 오대산사고
- 시대현대시대
- 저자김성희(金聖熙) (국사편찬위원회)
목차
위로 가기 조선 시기 외사고의 변천과 오대산사고김성희(金聖熙)
(국사편찬위원회)
Ⅰ. 머리말
Ⅱ. 조선 전기 외사고 제도의 연원과 성립
Ⅲ. 조선 후기 외사고 제도의 변천과 오대산사고의 설치
Ⅳ. 맺음말
상세소개
위로 가기태종 13년(1413) 태조실록이 찬수된 이래 고종 2년(1865) 철종실록이 완성되기까지 조 선 25대 왕의 실록은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만들어졌다. 선대의 국정 경험을 후대의 선정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고자 했던 선인들의 철저한 기록 정신 덕분에 오늘날의 우리는 472년의 장구한 기억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귀중한 기록 유산이 갖은 역경 속에서도 온 전히 보존되어 우리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데에는 이를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한 선인들 의 노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음은 물론이다. 이제는 우리가 선대의 유산을 잘 가꾸고 보존 하여 후속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역사적 과제를 지고 있으므로 선인들의 노력과 지혜를 본 받아 우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본 논문은 위와 같은 문제의식과 관련하여, 조선 시기 실록을 위시한 각종 史籍의 보존을 위해 고안되었던 外史庫 제도의 성립 및 운용 양상에 서술의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보다 구 체적으로는 외사고 설치 시의 입지 선정 원칙과 그 특징에 대해서 면밀히 고찰할 예정이다. 다만, 기왕의 연구를 통해 관련 주제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진척되어 있는 만큼, 본고에서 는 선행 연구에서 개진된 논의를 충분히 검토하여 정리한 바탕 위에, 본 주제와 관련한 내용 을 보다 세밀하게 기술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구성하도록 하겠다. 아울러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국외로 반출되었다가 최근 국내로 환수된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이 아직 온전한 보관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를 감안하여 오대산사고 의 입지 선정과 설치 및 운영 과정에 대해서 보다 세밀한 검토를 진행하도록 하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대산사고본 실록의 올바른 보관처를 찾기 위한 논의에 일말의 단서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조선 시기의 사고 제도 운영 방식이 임진왜란을 계기로 하여 일대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전국토를 유린한 병화로 인해 전주사고본 실록을 제외한 모든 실 록이 소실되었고, 이를 복구하기 위한 과정에서 외사고의 입지 선정과 설치 방식에도 획기적 인 변화가 가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운영되었던 외사고 제도의 특징과 운영 양상을 살펴본 후 각 시기별 제도의 특징과 의의를 도출해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