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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巖과 呑虛의 불교관: 해탈관과 생사관의 同處와 不同處
- 주제불교 사상과 교육 ; 한암(漢巖) 탄허(呑虛)의 불교관
- 시대현대시대
- 저자高 榮 燮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목차
위로 가기 漢巖과 呑虛의 불교관:해탈관과 생사관의 同處와 不同處
高 榮 燮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I. 문제와 구상
Ⅱ. 생사와 해탈의 통로
Ⅲ. 한암과 탄허 가풍의 동처
1. 한암의 일발선풍
2. 탄허의 향상일로 선풍
Ⅳ. 한암과 탄허 가풍의 부동처
1. 한암의 해탈관
Ⅴ. 오대산문의 살림살이
Ⅵ. 정리와 맺음
상세소개
위로 가기한암 중원(漢巖 重遠, 1876~1951)과 탄허 택성(呑虛 宅城, 1913~1983)은 지난 세기 한국 불교의 전반기와 후반기를 대표하는 선사들이다. 이들은 선승과 학승 또는 율사와 강사로 서 지눌(知訥, 1158~1201) 이래 선교일원(禪敎一元), 정혜쌍수(定慧雙修)의 전통을 회복시켰 던 눈 밝은 선지식들이었다. 이들은 ‘국망’( 亡)과 ‘ 망’(道亡) 혹은 ‘정화’(淨化)와 ‘법난’ (法難)으로 점철된 지난 세기 한국불교의 좌절과 혼돈을 온몸으로 이겨낸 산 증인들이었다. 한암은 어린 시절부터 세계의 근원에 대한 문제의식이 투철하였다. 그는 ‘반고씨 이전’의 소식을 넘어 ‘참다운 성품’(眞性)을 찾으려 출가하였고 다섯 차례의 깨달음의 전기를 통해 확철대오(廓徹大悟) 하였다. 스승 경허 성우(鏡虛 惺牛, 1846~1912)의 ‘미도선’(尾塗禪) 혹은 ‘예미선’(曳尾禪)의 가풍과 대비되는 삶을 보여준 한암은 오대산 상원사에서 27년간 주석 하며 ‘차라리 천고에 말없는 학이 될지언정, 삼춘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 겠다’는 사자후를 통해 ‘일발선’(一鉢禪)의 가풍을 보여준 대선사로 평가받고 있다. 탄허는 젊은 시절 한학과 유학을 공부하다 ‘문자 밖의 소식’을 알기 위해 한암과 3년에 걸친 약 스무 차례의 서신으로 불교와 유교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주고 받은 뒤 오대산으 로 출가하였다. 이후 그는 동양철학의 전 분야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강론’(講論)하고 ‘역 경’(譯經)하면서 한암의 가풍을 이었으며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선풍으로 자신의 살림살이 를 보여주었다. 한암과 탄허 두 사람은 17년간 오대산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나 선과 교, 계 와 율을 겸비한 가풍으로 한국불교의 자존을 지켜온 선승이자 학승이다. 따라서 이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지 사제만이 아니라 도반이요 동지였다고 할 수 있다. 무릇 절은 산에 있어야 제 맛이 나고, 산은 절을 품어야 제 멋이 나는 법이다. 아울러 절 에는 ‘사람’이 있어야 절 맛이 나고 사람은 절을 ‘품어야’ 사람 맛이 나는 법이다. 이 산문 은 신라의 황룡 자장(皇龍 慈藏, 607?~676?)에 의해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한 이래 ‘오대 성 지’(聖地) 혹은 ‘오대 성산’(聖山)의 명성을 획득해 왔다. 하지만 자장의 후견인이었던 선덕 여왕이 승하하자 진덕여왕-태종 무열왕 이후 분황 원효(芬皇 元曉, 617~686)와 부석 의상 (浮石 義湘, 625~702)에 의해 가려지기 시작하면서 이 산은 오랫동안 그 이름이 잘 드러나 지 않았다. 오대산이 성산의 위상을 회복한 것은 지난 세기 이래 한암과 탄허 두 사람을 품어 ‘산 문’(山門)에 필적하는 이름을 획득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두 사람은 저마다의 독 자적 개성으로 오대산의 이름을 널리 드날려 이곳을 한국불교의 주요 무대로 만들었다. 하 여 한암과 탄허 두 사람은 ‘오대산문’의 명성을 다시 복원시킨 중심인물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붇다는 미혹[惑]에서 비롯된 업식[業]에 의해 이루어진 고통[苦]을 벗어나는 길을 가르쳤 다. 그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생사로부터 비롯된 윤회를 벗어나 해탈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였다. 그는 윤회를 벗어나 해탈함으로써 자신의 의지에 의해 생사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여기서 생사는 윤회의 다른 이름이며 해탈은 생사를 벗어난 대자유를 일컫는다. 때문에 ‘불제자’는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 삼계의 윤회세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심하 는 존재’이며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나누기 위해 ‘서원하는 존재’이 다. 그러므로 ‘불교적 인간’은 ‘생사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생사관)을 통해 ‘해탈을 향한 중 도적인 지혜’(해탈관)를 열어가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생사’의 끝은 곧 해탈이며 ‘해 탈’의 끝은 곧 생사라는 점에서 이들 두 기호는 불교의 본질을 머금고 있다. 따라서 오대산문의 두 선사인 이들 한암과 탄허의 생사관과 해탈관을 살펴보는 것은 이 들의 불교관을 살펴보는 것이면서 동시에 이들의 살림살이를 탐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암과 탄허 가풍의 동처(同處)에서 우리는 이들 가풍의 보편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고, 부 동처(不同處)에서는 이들 가풍의 특수성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들 두 선사 의 어록과 저술에 나타난 생사관과 해탈관을 통하여 오대산문의 살림살이를 탐색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