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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 선사의 선문답과 공안
- 주제석전과 한암, 한국불교의 시대정신을 말하다
- 시대현대시대
- 저자윤창화 _ 도서출판 민족사 대표
상세소개
위로 가기선의 세계, 오도의 경지에 대해 선사와 선사, 또는 스승과 제자납자 사이에 나누는 격외의 대화, 기지機智의 대화를 ‘선문답’, 또는 ‘법거 량法擧揚’이라고 한다. ‘선을 주제로 하여 나누는 문답’이라는 뜻이다. 선문답은 중국 선불교가 낳은 독특한 대화 방식이다. 의표를 찌 르는 질문을 통해서 학인의 공부 상태나 또는 상대방의 경지를 간파 看破, 감파(勘破)하는 것으로 이는 중국의 문화적 토양과 관련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한당漢唐의 문인들은 즉석에서 시詩를 주고받아서 상 대방의 실력을 가늠했는데 이때 잠시라도 머뭇거리면 안 된다. 즉시 화답해야 한다. 선문답은 주로 표전表詮, 직접적 표현보다는 차전遮詮, 우회적 표현을 사용 한다. 즉 저 산 너머에서 연기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불이 난 줄 알 아 차려야 하고, 담장 너머로 뿔이 보이면 소가 있는 줄 알아야 한 다.• 1 선문답은 『중론』의 전개 방법과도 비슷한데 이것이 선문답의 특징이며, 이 또한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문답은 즉문즉답으로 진행된다. 빈주賓主, 문자(問者)와 답자答者가 잠 시라도 머뭇거리면[의의(擬議)] 벌써 사량 분별심이 개재介在돼 있는 것 이다. 항상 반야지혜가 활발발하게 작용하고 있고 일상이 본분사와 불이일여不二一如가 되어 있다면 선문답은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와야 한다. 할喝로 유명한 임제 의현?~867은 납자들이 머뭇거리면 즉시 벽력 같은 소리로 질타했다[승의의僧疑議, 사변할師便喝]. 선종사에서 최초의 선문답은 달마와 혜가 사이에 전개된 ‘안심법 문安心法門’이라고 할 수 있다. “괴로워하는 그 마음을 내 앞에 가지고 오면 즉시 편안하게 해 주겠다”는 달마의 말에 혜가는 온 사방을 뒤 져도 괴로운 마음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공성空性 곧 ‘괴 로운 마음[고심苦心]의 실체가 없음’을 자각하게 하여 마음의 평온을 되 찾게 하는 방법이다. 달마의 안심법문은 기지機智와 반야지혜가 동시에 작용한 대표적 인 선문답이다. 이후 많은 선문답공안이 생겼는데 『전등록』1004년에 수 록되어 있는 1,700가지 공안은 곧 1,700명을 깨닫게 한 오도기연이 다. 선문답은 공空·진여眞如·불성佛性·중도中道·중관中觀·진공묘유 眞空妙有·인법무아人法無我·불이不二·무집착·무심無心·무사無事·무 분별·일체유심조·이사구절백비離四句絶百非·언어도단言語道斷 등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선문답법거량은 단답식으로 매우 짧고 수작酬酌도 5~6회를 넘지 않는다. 그 이상이 되면 그것은 전미개오轉迷開悟케 하 는 일전어一轉語가 아니라 오히려 납자로 하여금 사량 분별심이나 의 리선에 빠지게 한다. 선문답은 1:1 독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대중이 모인 장소 에서는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상당법어 등에서는 공개적으 로 이루어지고 독참獨叅, 청익請益 등에서는 개별적으로 이루어진다. 선문답에는 어떤 정형이나 정답 또는 틀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전혀 틀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상식적인 틀 을 벗어난 ‘무형식의 형식’, ‘무정답 속의 정답’이 하나의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선문답에 대하여 양억楊億은 『전등록』 6권 백장회해 장章 부록에 실려 있는 「선문규식」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납자(賓)와 방장(主)이 서로 묻고(問) 답(酬)하여 종요(宗要, 핵심)를 격양 시키는 것, 이것은 법에 의하여 주(住)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賓主問 酬, 激揚宗要者, 示依法而住也)”• 2. 선문답은 불법의 요체를 격양, 진작振作시키는 역할을 하며 항상 진제眞諦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것은 개인적인 정의가 아니고 선불교 전체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선문답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자각을 통하여 참선자상대방로 하여금 전미개오轉迷開悟하게 한다. 즉 수행자는 선사의 일전어一轉語에 자각하여 범부에서 부처의 세계로 전환한다. 또 정신적·사상적인 구속과 통속적인 관념, 규 범, 가치관 등의 굴레,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인으로 돌아가게 한 다는 것이다. 둘째, 선문답은 납자의 공부 척도와 오도悟道 여부를 파악하는 역 할을 한다. 수행의 척도와 오도 여부를 검증하는 데에 어떤 공식적인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깨달았는지 여부를 파악하는 것은 오로지 정 법안장을 갖춘 선사만이 가능한데 그 검증 방법이 바로 선문답이라 고 할 수 있다. 셋째, 선사와 선사 사이에 주고받는 선문답은 상대방의 경지를 헤아리는 역할을 한다. 즉문즉답이 되지 못하고 머뭇거리면[의의(疑議)] 그것은 곧 사량 분별심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선문답은 수행자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당송 시대 선승들의 오도기연悟道機緣을 살펴보면 대부분 문답을 통하 여 깨달았다. 또는 향엄격죽香嚴擊竹이나 영운도화靈雲桃花와 같이 사물 의 변용을 보고 깨달았는데 뜻밖에도 좌선을 하다가 깨달았다고 하 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