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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 택성의 三玄觀과 佛敎觀
- 주제『주역선해』 譯注와 『노자』·『장자』 譯解를 중심으로
- 시대현대시대
- 저자고영섭 (동국대 서울캠 불교학과 교수)
목차
위로 가기 탄허 택성의 三玄觀과 佛敎觀- 『주역선해』 譯注와 『노자』·『장자』 譯解를 중심으로 -
고영섭 (동국대 서울캠 불교학과 교수)
1. 문제와 구상
2. 탄허의 삼현 이해
3. 탄허의 『주역선해』 역주
1) 지욱의 以禪入儒적 『주역』 선해
2) 탄허의 以儒入禪적 『주역선해』 역주
4. 탄허의 『노자』『장자』 역해
1) 탄허의 華嚴禪적 『노자도덕경』 선주
2) 선영무의 禪的 『장자남화경』 주해
3) 탄허의 華嚴禪적 『장자남화경』 역해
5. 탄허의 선법 인식
4. 정리와 맺음
상세소개
위로 가기부모의 몸을 빌어 태어나 숨이 멈춰 떠날 때까지 대략 일백년 동안의 인간의 삶은 다양하게 변주된다. 만일 그가 문인, 사가, 철인, 선사, 예인 등과 같은 공인(公人)이라면 그의 살림살이는 더욱 더 다채로워질 것이다. 백 년 전 유학을 가학으로 한 집안에서 태어난 탄허 택성(呑虛 宅成, 1913~1983)은 유자(儒者)에서 도자(道者)를 거쳐 한암 중원(漢巖 重遠, 1876~1951)과 약 3년간 도와 관련된 서신 20여통을 주고받다가 22세에 불자(佛者, 佛子)로 탈바꿈하였다. 출가 이후 그는 한평생을 수행자, 역경가, 교육자, 경세가 등으로 살면서 역경 결사와 교육 불사에 헌신을 하였다. 탄허는 학인 양성을 위해 한암이 세운 강원도 삼본산 승려연합수련소에 이어 몸소 월정사 수도원과 영은사 수도원을 세워 인재 불사를 하였고, 월정사 방산굴(方山窟)과 영은사 일소굴(一笑窟)에서 내외전을 역주(譯注)하며 역경 결사를 하였다. 탄허는 “한국불교의 미래는 법당 100채를 짓는 것보다 학인들을 공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육이념 아래 인재 불사에 헌신하였다.
그가 수많은 내전(內典)은 물론 외전(外典)까지 아우르며 현토 역해하고 강술 강론한 것은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교재의 편찬이 무엇보다도 급선무임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흔히 유자(儒者)는 『사서』와 『오경』의 세계관을 자신의 거울로 삼아 내성외왕(內聖外王)적 삶을 추구하는 군자(君子)를 이상적 인간상으로 삼는다. 이와 달리 도자(道者)는 『노자』(道德經)와 『장자』(南華經) 및 『열자』와 『황제내경』 등의 세계관을 자신의 거울로 삼아 무위자재(無爲自在)하는 삶을 지향하는 지인(至人, 神人, 聖人)을 이상적 인간상으로 삼는다. 반면 불자(佛子, 佛者)는 『아함경』 등의 세계관을 통해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아라한상과 『반야경』과 『법화경』 및 『정토경』과 『화엄경』과 등의 세계관을 통해 타인의 깨달음을 이루려는 보살상이 하나의 몸속에 구현된 부처(佛體, 붓다)를 궁극적 인간상으로 삼는다. 군자와 지인과 붓다는 각기 이름은 다르지만 영원한 대자유의 삶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상통하고 있다. 하지만 삼세의 인과에서 자유롭게 벗어나 영원한 대자유를 추구하는 붓다는 현세에서 인승(人乘)을 추구하여 공부를 하는 군자와 천승(天乘)을 추구하여 수양을 하는 지인과는 구별된다.
분황 원효(芬皇元曉, 617~686) 이래 통일신라 말기에 불도유(佛道儒) 삼교에 뛰어난 재주(안목)를 지녔던 인물[三絶]로 널리 알려져 온 고운 최치원(857~?) 이후 한국사상사에서는 적지 않는 ‘삼절’들이 있어 왔다. 이를테면 고려 중기의 교웅(敎雄)과 이규보(李奎報) 등을 비롯하여, 조선 초중기의 함허 기화(涵虛 己和)와 청한 설잠(淸寒雪岑), 허응 보우(虛應普雨)와 청허 휴정(淸虛休靜), 백파 긍선(白坡亘璇)과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와 초의 의순(草衣意恂), 월창 김대현(月窓 金大鉉)과 경허 성우(鏡虛惺牛) 등은 대표적인 ‘삼절’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교의 세계관을 가지고서 다른 세계관을 가지게 되면 ‘이단’(異端) 혹은 ‘난적’(亂賊) 또는 ‘배교’(背敎)라고 핍박하던 조선 성리학적 세계관 이후 이들 삼절의 계보는 잘 이어지지 못했다. 때문에 대한시대(1897~ )에 살았던 탄허는 이러한 삼절의 계보를 이은 희유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면암 최익현(勉庵 崔益鉉, 1833~1906)-간재 전우(艮齋 田愚, 1841~1922)-이극종(李克宗) 계통으로 이어지는 기호학통을 이은 집안의 학문에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유자로 출발한 탄허는 도자를 거쳐 불자로 탈바꿈한 뒤에도 평생을 드넓게 배우고[博學] 자세히 물었다[審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