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학(呑虛學)’의 골수(骨髓)와 종지(宗旨) > 학술자료실

화엄선 연구소 소개

오대산 역대 선지식

학술 자료실

특별강연자료실


학술자료실

학술자료실


본문

‘탄허학(呑虛學)’의 골수(骨髓)와 종지(宗旨)

  • 주제탄허대종사 탄신백주년을 ‘탄허학(呑虛學)’ 연구 원년(元年)으로
  • 시대현대시대
  • 저자문광 (文光)
목차
위로 가기 ‘탄허학(呑虛學)’의 골수(骨髓)와 종지(宗旨)
탄허대종사 탄신백주년을 ‘탄허학(呑虛學)’ 연구 원년(元年)으로
문광 (文光)
Ⅰ. 서언(序言) - ‘탄허학(呑虛學)’의 21세기적 의미
Ⅱ. 탄허학(呑虛學)의 체(體)
1. 무애(無碍)와 회통(會通)
1) 화엄(華嚴)의 사사무애(事事無碍) 사상
2) 유불선(儒佛仙) 삼교회통(三敎會通) 사상
2. 향상(向上)과 귀일(歸一)
1) 제일구(第一句)로의 향상일로(向上一路)
2) 회교귀선(會敎歸禪)의 경허-한암 선풍(禪風)의 완성
Ⅲ. 탄허학(呑虛學)의 용(用)
1. 교육사업(敎育事業)과 역경불사(譯經佛事)
1) 인재양성의 일승보살행 - 유교무류(有敎無類)와 회인불권(誨人不倦)
2) ‘한국적 역경(譯經)’ - 현토직역과 종지중심(宗旨中心)의 주석채택
3) 서문(序文)에 담은 골수법문과 대중강설의 사자후
2. 간산사상(艮山思想)과 민족불교(民族佛敎)
1) 탄허 역학사상에 나타난 우환의식(憂患意識)
2) 중국역(中國易)에서 한국역(韓國易)으로 축의 전환 - 주역(周易)과 정역(正易)의 통합을 통한 지기(知幾)와 전망(展望)
3) 탄허 미래학의 특질과 상징 - ‘간산(艮山)’과 ‘추성봉(樞星峰)’으로 계승된 불국토사상
Ⅳ. 미결(未結)의 결어(結語) - ‘21세기 한국학(韓國學)’의 새로운 지평으로서의 ‘탄허학(呑虛學)

상세소개
위로 가기

탄허 택성(呑虛 宅成, 1913-1983년) 대종사는 평소에 “나는 당대(當代)의 일은 하지 않는 다. 명전천추(名傳千秋)하는 일만 하겠다.”고 했다. 과연 스님의 사자후대로 당신의 종신사 업(終身事業)이 후대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대종사 사후 30 년 한 세대가 흐른 금년 탄신백주년을 맞아 스님의 사상과 학술에 관한 다방면에서의 활발한 재조명 행사가 진행중에 있다.

필자가 10년 이상 스님의 사상을 꾸준히 사숙(私淑)해 온 바에 의하면, 스님의 사상을 남김없이 화반탁출(和盤托出)하기 위해서는 다방면에 걸친 매우 깊은 학술과 기나긴 시간동안의 연구가 수반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단지 올 한해만의 이벤트성의 학술대회나 제반행 사만으로는 스님의 진면목(眞面目)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으므로 탄허사상의 고준한 가치와 시의성(時宜性)에 대한 국가와 조계종단의 깊은 인식의 토대위에서 ‘탄허학(呑虛學)’ 전문연 구자들의 방대한 양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에서 ‘탄허학(呑虛學)’이라 함은 필자가 이 지면을 통해 처음 사용하는 말이 될 것이 다. 우리 한국에는 원효학(元曉學), 퇴계학(退溪學), 율곡학(栗谷學), 다산학(茶山學) 등과 같은 개인의 사상에 대한 연구학문이 이미 존재해 왔다. 이렇듯 한 개인을 학술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에는 단순히 그 일인(一人)의 사상을 연구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그가 살았던 동시대의 모든 사상과 정신, 그리고 사회상과 인간학 전반을 이해하고 통찰할 수 있게 됨으로써 그 시대의 전반적인 정서와 수준, 관심사와 생활모습을 총체적으로 고찰하여 그시대전체가 가지는 장점과 한계를 개관해 볼 수 있게 된다.

지난 20세기 백년간의 근현대 한국사(韓國史)를 놓고 보면 인간사유가 빚어낸 모든 총체적 양상들이 충돌하고 접합했던 이 한반도라는 필드위에서 수없이 많은 사상가와 인물들이 명멸해 갔다. 격변하는 근·현대라는 시·공간속에서 동서(東西)와 고금(古今)이 교직(交織)되고 온갖 사상(思想)과 주의(主義)가 난무한 가운데 일제시대와 6.25전쟁, 4.19와 5.16, 산업화와 민주화의 급변하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감내하고 마침내 맞이해낸 것이 한국인의 21세기 이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모든 역사적 경험과 모험이 이 한반도에서 펼쳐졌으며 그러한 역사의 도전과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지구촌에 되먹여 준 사태가 바로 오늘날의 한류(韓流)라는 것이다. 이 ‘한류’라는 말에는 지난 세기를 오롯이 살아낸 한국인 전체의 한 (恨)과 인욕바라밀의 정진(精進)이 숨어있다. 금발의 외국인이 한국어를 따라 노래 부르고, 지구 반대편에서 한국의 드라마를 시청하며, 점점 더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아 관광을오고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 1등이 목표임을 거리낌없이 말하고 있고, 자신감과 에너지가 넘치며, 백두대간 곳곳에는 생기(生氣)와 활력(活力)이 충만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 한류의 시대가 지나고 좀더 깊이 한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사의 주역으로 발돋음할 때 어떤 외국인이 ‘한국정신(韓國精神)’은 과연 무엇이며, 한국의 부사의(不思 議)한 성장과 굴하지 않는 생명력의 근저(根柢)에는 어떠한 사상이 있냐고 물어오는 날이멀지 않았음을 예견할 때, 우리는 과연 한국의 정신이 무엇이라고 명쾌하게 답변할 수 있겠 는가?

필자는 한류의 뿌리가 되는 한국인의 사상과 정신을 연구하는 한국학(韓國學)의 한 학인(學人)으로서 그 해답을 탄허사상(呑虛思想)에서 찾고자 한다.

한국인의 정신을 고려시대까지의 불교역사 전체를 버려둔 채 조선 유교 오백년에서만 찾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한국인의 사상을 수승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교의 선사상(禪 思想)이나 화엄사상 하나로만 일축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한국정신(韓國精神)을 대표할 수있는 인물이라면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담보하면서 한국정신(韓國精神)의 총화(總和)를 죄다 함유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20세기 한국사상의 정수(精髓)를 20세기 한국의실존인물에서 상징적으로 찾아본다고 할 때 필자는 그 하나의 해답으로 탄허스님을 꼽는데주저하지 않는다.

지금 현대는 융합(融合)과 회통(會通), 협업(協業)과 소통(疏通)의 시대이다. 20세기 한국 사상사에서 한 개인을 놓고 볼 때 사통팔달(四通八達)·종횡무진(縱橫無盡)하여 광대실비(廣 大悉備)하게 총합적 학술을 전개하여 ‘학(學)’이라는 칭호를 부여할 만한 대표적 인물로 탄허스님을 제외하고 과연 누구를 거론할 수 있겠는가!

유불선(儒佛仙) 삼교의 동양정통사상을 하나로 일이관지(一以貫之)하고, 거기에 기독교와서양사상까지 겸하여 융합회통(融合會通)하면서도, 인간의 영원한 과제인 심성수행(心性修 行)을 선교겸수(禪敎兼修)로 온전히 수행·제시하고, 인재양성과 역경·교육사업의 보살행까지총망라한 20세기 한국학(韓國學)의 ‘학종(學宗)’ 은 단연 탄허스님이었다.

게다가 한국의 미래상에 대해서 주역(周易)과 정역(正易)의 방대한 역학(易學)적 근거위에서 한국인의 밝은 미래에 대해 희망의 비젼을 미리 제시함으로써 유사이래 제반의 민족 사상(民族思想)과 불국토설(佛國土說)에 점정(點睛)의 일획을 그어준 희유의 미래학자가 바로 탄허스님이었다.

한국학(韓國學)의 전형을 담보하고 있는 대도인을 지척에 두고도 불교학계를 비롯한 한국의 인문학·철학·종교학계에서의 탄허사상 연구는 그동안 너무나 지지부진했다.

퇴계가 손자에게 보낸 편지에는 “기각첨도수(棄却甛桃樹)하고 순산적초리(巡山摘醋梨)로 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집의 단 복숭아나무는 버려두고 온 산을 돌아다니며 똘배를 따고다닌다는 뜻이다. 한국학의 위대한 선학(先學)이자 불교학의 위대한 선각(先覺)인 탄허스님은 내버려두고 외국에서 수입된 학문을 바탕으로 한국학을 구성하고 미국·유럽과 일본·티벳·동남아를 주유(周遊)하며 불교학을 배우러 다니는 실정이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

라 우리의 근거리에 불과 얼마전에 위대한 선지식이 바로 곁에서 호흡하면서 방대한 학술을 전개해 두었는데도 방외로 치지도외해 두었던 것을 탄식하는 것이다.

맹자 의 맨 마지막장에는 이와 관련된 아주 의미심장한 맹자의 한 마디 한탄이 실려

있다. 요·순·우·탕·문·무·주공·공자(堯舜禹湯文武周公孔子)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성인은 5백년에 한 번씩 출세함에 반드시 그 사이에 직접 보고서 안 견이지지(見而知之)가 있었고 들어서 안 문이지지(聞而知之)가 있었는데 공자에서 맹자까지는 백 여년이 흘렀건만 “아무것도 없으니 앞으로도 아무것도 없겠구나(然而無有乎爾, 則亦無有乎爾)” 라는 한탄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탄허스님이 입적한지 한 세대가 흘렀다. 지금 우리 곁에는 탄허스님에게 직접 지도받고 배운 법제자들과 출·재가의 많은 견이지지자(見而知之者)들이 생존해 있다. 이들이 생존해 있을 때 반드시 탄허학(呑虛學)이 하루속히 출범해야 한다. 그래야만 필자와 같이 스님 에게 직접 배우지 못한 문이지지(聞而知之)의 후학(後學)들이 올바른 탄허사상을 후대에 정확하게 전해 남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지체하면 문이지지자(聞而知之者)들만의 억측과상상으로 행여 탄허스님의 종지(宗旨)가 왜곡되거나 잘못 전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한걸음 더 나아가서 어쩌면 맹자의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無有乎爾)’는 자조섞인 푸념을 하는 후세인이 나올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금년 탄허스님 탄신백주년을 탄허학(呑虛學) 연구 원년(元年)으로 삼아서 앞으로 탄허사상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공부하는 많은 수행자들이 나와야 하는 이유인 것이 다.


첨부파일


대표 : 퇴우 정념스님 주소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374-8 전화 : 033-339-6800 / 팩스:033-332-6915
COPYRIGHT © 화엄선연구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