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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수도원과 김탄허

  • 주제- 정혜결사의 현대적 변용 -
  • 시대현대시대
  • 저자김 광 식 (대각사상연구원 연구부장)
목차
위로 가기 오대산수도원과 김탄허*
- 정혜결사의 현대적 변용 -
김 광 식
대각사상연구원 연구부장
Ⅰ. 서 언
Ⅱ. 수도원의 설립
Ⅲ. 수도원의 운영과 교육
Ⅳ. 수도원의 해체와 재기
Ⅴ. 사상적 전통 및 역사적 의의
Ⅵ. 결 어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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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520, 이승만대통령의 담화(유시)로 촉발된 불교정화는 불교계의 비구승, 대처승 간의 치열한 갈등과 대립을 가져왔다. 불교정화는 일제의 식민지 불교의 잔재 청산과 한국불교의 전통을 회복키 위한 목적에서 출발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대처승의 축출로 귀결되었다. 이는 대처승이 일제불교의 잔재, 혹은 한국불교의 전통에서 이탈된 것으로 이해되었던 당시의 지배적인 현실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그 결과 조계종단의 종권은 19558월의 전국승려대회를 기점으로 공권력과 일반 여론의 후원을 받은 비구승측에게 전환되었다.

그러나 불교정화는 그 추진과정에서 반불교적인 행태의 노정, 공권력의 개입 등 다양한 측면의 문제점을 야기하였다. 요컨대 정화과정에서 나온 문제점은 정화의 타당성과 명분을 희석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정화 추진의 주체 및 정화의 대상이었던 승려들의 문제로 귀결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본고는 정화운동에 관한 이와 같은 배경에서 집필되었다. , 정화운동이 일단락 된 이후 정화운동의 모순과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 움직임이 있었는가 하는 측면에서 본고의 주제를 선택하였다. 달리 말하자면 정화운동의 모순과 문제점을 제공한 승려들의 반성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그 반성의 방향은 정화운동 당시의 부산물인 반불교적인 행태를 인정하고 미래에는 그러한 모순과 문제점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성찰의식의 구도에서 나타남이 순리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곧 교육문제라는 초점을 갖는 것이다. 따라서 정화운동에 대한 성찰은 교육 차원에서 접근될 가능성을 이해할 수 있다. 정화운동이 일단 마감된 것으로 이해되는 통합종단 출범(1962. 4) 이후에 조계종단이 불교현대화를 위한 3대불사의 하나인 도제양성의 일환으로 종비생을 선발, 교육시킨 것도 이러한 이해 구도와 무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같은 배경하에서 195641, 강원도 월정사에서 五台山修道院이 발족한 것은 우리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대상 주제라 하겠다. 이 오대산수도원은 30여명이라는 소수의 승려 및 불교청년을 교육시키려는 차원에서 구체화되었다. 교육 내용의 다양성과 5년 기한을 설정하고 출발하였다는 것을 유의하면 수도원을 주도한 주체들의 포부는 대단한 것이었다.

이 수도원은 당시 월정사 주지이자 강원도 종무원장이었던 金呑虛의 주도, 주관하에 설립되었다. 또한 거기에는 당시 조계종단의 일정한 후원이 개재되어 있었다. 때문에 이런 정황으로 이 수도원은 정화운동이 일단락 된 19558월 이후의 정화운동 주도자들의 현실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요컨대 정화운동에 대한 성찰이 은연중에 배여 있었다고 이해된다. 그러나 이 수도원은 비구대처간의 갈등이 월정사에서 재연되는 혼란으로 인하여 소기의 목적을 기하지 못하고 1957년 겨울경에 해체되었다. 이에 수도원을 주도한 김탄허는 1958년 초에 삼척의 영은사로 이주하여 수도원 지속을 통한 교육사업을 재개하면서 그 전통 계승을 지향하였다. 196210, 영은사의 수도원을 마감하고 월정사로 복귀한 김탄허는 더욱 본격적인 역경에 매진하였다.

한편 이 오대산수도원의 건립 및 운영은 고려시대 知訥이 구현한 定慧結社의 현대적 변용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는 수도원의 원훈을 定慧雙修라고 표방한 바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지눌의 정혜결사가 근현대 불교에 미친 영향에 대한 검토는 간헐적으로 있었지만 오대산수도원은 그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오대산수도원을 정혜결사와 관련지을 수 있는 것은 김탄허의 은사인 方漢岩이 정혜결사의 정신을 계승하였다는, 김탄허는 일제말기 방한암이 주도한 오대산승려수련소에서 조교 역할을 하면서 방한암의 에 대한 정수를 전수받았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 요컨대 정혜결사를 지향한 방한암의 정신이 김탄허에 의하여 계승되었는바, 이는 정화운동 일단락이라는 현실에 직면하여 변용이라는 모습으로 재현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대산수도원은 정화운동 발발 직후 최초의 성찰의 산물, 조계종단 차원의 최초의 교육결사라는 위상을 담보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오대산수도원에 대한 정리, 분석, 이해에 관련된 고찰은 전무하였다. 간혹 김탄허의 행적을 조명하면서 스쳐 지나가는 정도로 언급하는 수준이었다. 요컨대 오대산수도원이 갖고 있는 본질 및 성격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미약하였다. 달리 말하자면 그 수도원이 갖고 있는 내용과 위상을 이해할 정신적 안목이 부재하였다.

본 고찰은 정화운동의 성찰 차원에서 교육문제를 본격적으로 접근함과 동시에 정혜결사의 현대적 계승을 모색하기 위한 차원에서 서술되었다. 이에 오대산수도원의 배경, 설립과정, 교육내용, 해체, 재추진, 사상적 전통 및 역사적 의의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미진한 내용은 지속적인 자료수집과 선학제현의 질정을 받아 보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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