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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呑 虛 의 結 社 運 動 에 대한 새로운 照 明
- 주제呑 虛 의 結 社 運 動 에 대한 새로운 照 明
- 시대1995년
- 저자金 浩 星
목차
위로 가기 呑 虛 의 結 社 運 動 에 대한 새로운 照 明金 浩 星
Ⅰ. 머리말
Ⅱ. 結社로서의 수도원운동
1. 呑虛의 수도원운동, 결사일 수 있는가
2. 오대산수도원과 영은사수도원의 차이
Ⅲ. 結社로서의 譯經
1. 譯經의 結社
2. 結社의 譯經
Ⅳ. 맺음말
상세소개
위로 가기불교사에서 우리는 많은 결사운동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백련결사, 고려 때의 정혜결사와 백련결사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결사운동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이유는 불교가 이 땅에 오래 머물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正法久住를 위해서 계율을 제정한다고 말씀하신 붓다의 그 염원을, 나는 결사운동을 펼치신 선각자들에게서도 똑같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붓다의 정법을 오래도록 머물게 할 수 있을까?
正法久住의 미래지향적 염원으로부터 출발한 결사에의 관심은 결사가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었으며, 또 그 전개과정은 어떠했는가 하는 점에만 머물지 않게 된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결사에 대한 글쓰기는 事實 혹은 史實로서의 결사에 대한 敍述로서 그쳐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正法久住의 염원을 갖고 바라볼 때 과거 결사의 전개과정에 대한 이해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에 결사를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기 때문이다. 事實/史實로서의 결사보다는 規範으로서의 결사를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제기될 수 있는 질문은 “도대체 결사란 무엇인가”라거나 “결사는 과연 어떻게 행해져야 할 것인가”일 터이다.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은 과거의 事實/史實만을 책상 위에 펼쳐 놓고서 해석하고 평가하는 역사학적 방법론만으로는 다 제시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역사학적 방법론을 의지하면서도, 그 위에다가 다시 미래지향적 哲學의 投射(project)가 요청된다고 본다. 이리 하여 나는 오래도록 결사란 무엇이며, 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되물어왔다. 그리고 1995년에 나는 다음과 같이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 일이 있다. 그러나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정의에서 약간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개혁운동’으로 결사를 파악한 점에 대해서는 재검토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行間에는 1994년의 종단 개혁불사를 거치면서 종단의 변화를 바라보는 나 자신의 비판 적이고도 회의적인 관점이 투영되어 있다. 金光植은 나의 이러한 회의를 다음과 같이 꿰뚫 어보았다. 량의 예를 들어 보지요. 선우도량은 출범 당시에 결사적인 지향, 이념, 외피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94년 종단개혁, 98년 종단사태의 중심으로 점차 진입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내적 한계를 극복치 못하고 자진한 단체입니다. 초창기에는 참여 속의 개혁이 아니었고, 94년, 98년은 참여 속의 개혁이 라고 볼 수 있어요.
이렇게 결사가 ‘참여 속의 개혁’으로 자진해 가는 것은, 그 어떤 명분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권력화의 길을 걷게 된다는 점에서 反결사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처럼 결사가 권력화되는 것을 막는 것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결사의 정의 안에 脫권력의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 이는 앞으로의 결사운동에 하나의 規範的 방향을 제시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 기도 하다. 그리하여, 나는 결사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수정하기에 이른다.
결사: 불교교단의 문제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서 직접 그 상황 속에 참여하여 개혁 하고자 하는 대신, 그 상황으로부터 避隱하여 먼저 스스로 수행함으로써 장차 그러한 상황을 극복 하고자 하는 일을 말한다. 그것은 권력이나 정치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므로, 종단의 제도나 조직을 활용하지 않는 순수 민간, 在野 차원이어야 한다.
또 脫권력 내지 脫정치를 지향하므로 반드시 2인 이상의 모임이 아니어도 무방하다.
이렇게 결사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게 되자, 뜻밖에도 呑虛宅成(1913~1983)의 생애가 곧바로 결사의 一生이었음을 재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呑虛야말로 일찍이 소리 없이, 내가 오늘날 지향하는 결사운동의 典範으로서 외로운 길을 묵묵히 걸어갔던 것이다.
우선 呑虛의 결사와 관련한 종래의 연구 에서 일정 부분 수정할 필요를 느끼게 됨과 동시 에, 종래에는 아무도 ‘결사’로 평가하지 않았던 생애의 一大事였던 譯經불사를 결사로서 평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呑虛의 결사에 대해 선구적 업적을 남긴 金光植의 견해에 내가 수정의견을 제시하는 부분은, 金光植과 달리 나는 “오대산수도원은 결사로 보지 않으며 영은사수도원만을 결사로 본다”는 점이며, 새롭게 결사로 재평가하게 된 부분은 신화엄경 합론의 번역을 정점으로 하는 그의 역경불사를 결사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재평가가 가능하게 된 데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래지향적 철학의 방법론이 투사된 결과이므로 역사적 방법론에 의한 연구결과와 반드시 兩立 불가능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이 글에서 나의 관심사는 과거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아니라 그것을 고려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철학적 규범의 제시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밝혀두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