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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의 佛典譯經과 그 意義
- 주제탄허선사의 선교관
- 시대현대시대
- 저자尹 暢 和
목차
위로 가기 탄허의 佛典譯經과 그 意義尹 暢 和
1. 머리말
2. 譯經의 動機와 背景
3. 譯經 經典의 種類와 底本
4. 譯經의 觀點과 文體
5. 譯經書의 底本에 나타난 특징
6. 맺는말 - 呑虛 譯經의 역사적 意義
상세소개
위로 가기불교경전에 대한 정확한 번역은 불교의 학문적 사상적 발전은 물론 대중교화와 승단의 정체성 확립 등 여러 방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불멸 후 100년경 20여 개 부파로 분열하고 또 대승불교성립 후 중국, 한국 등지에서 天台, 華嚴, 禪 등 많은 종파가 성립하게 된 것도 경전이나 율장 또는 교리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고찰해 본다면 경전에 대한 보다 정확하고 올바른 번역 은 무엇보다도 先行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가 있다. 譯經을 통하여 중국불교의 토대를 확립한 최고의 역경승 구마라집(344~ 413)은 중국인의 思惟방법과 언어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여 모든 경전을 意譯 하였다. 그러나 후대의 역경승 唐 玄奘(600~664)은 구마라집의 意譯에 대하여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직역을 택했다. 曇無讖과 求那跋陀羅, 菩提流支, 眞 諦, 義淨 등도 역시 자신의 견해를 갖고 새로운 번역을 추진하였다. 이 때문 에 대승경전, 특히『금강경』의 경우는 여러 가지 異譯本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 역시 보다 정확하고 올바른 역경에 대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불경번역의 효시는 조선조 世祖 당시의 언해에서 비롯된다. 불교와 인연이 깊었던 세조(재위 1455~1468)는 왕위 찬탈과정에서 희생된 많 은 사람들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즉위 7년(1461) 조정에 불경간행소인 刊經都 監(1461~1471)을 설치하여 당시 고승인 信眉․守眉․弘濬․學照․혜초등 과 함께『楞嚴經諺解』(1462),『法華經諺解』(1463),『永嘉集諺解』(1464),『金 剛經諺解』(1464) 등 모두 9종의 불전을 諺解, 刊行하였다. 이것이 최초로 이 루어진 불전 한글번역(譯經)으로서, 이는 당시 정치 사회적으로 확고부동한 위치에 있던 유교의『四書』언해(1590, 선조23) 보다도 무려 128년이나 앞서 고 있다.이는 매우 특이한 일로서 당시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언해판 경전은 이후 한글 역경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으며 국어국문학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간경도감의 불경번역(언해)은 1468년 세조의 죽음과 함께 실질적인 막을 내린다. 그리고 儒敎 이념하의 정치구도에서 간경도감 철폐론이 본격적으로 대두 되자 성종은 결국 1471년(성종2) 간경도감을 폐지하였다. 하지만 그 뒤에도 각 사찰 단위로『地藏經諺解』(1569),『初發心自警文諺解』(1577),『證道歌南明 繼頌諺解』(1482),『佛頂心多羅尼經諺解』(1561),『六祖壇經諺解』(1496),『父 母恩重經諺解』(1553),『禪家龜鑑諺解』(1569) 등 30여 종의 불경이 계속 언해 간행되었다. 한말 근대(1900~1945)에 이르러 譯經은 간경도감의 언해본을 바탕으로 한 제2期 역경으로서, 과거 조선조 언해 수준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우리말 역 경을 하고자 하였다. 주로 白龍城(1864~1940), 安震湖(1880~1965), 許永湖 등에 의하여 개인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일제의 식민통치라는 어려운 여건 속 에서도 불교포교와 신도교화를 위하여 많은 경전을 번역하였다. 해방 후 현대에 이르러 역경은 李耘虛(동국역경원)를 중심으로 한 종단적 차원과 金呑虛를 중심으로 한 개인적 차원의 두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동국 역경원은『한글대장경』을 만들고자 1960년대 중반부터 정부와 종단의 지원 아래 활발하게 역경활동을 전개하였는데, 그 주역이『한글대장경』간행에 생 애를 바친 李耘虛스님(1892~1980)이다. 그의 역경은 대부분 의역으로서 대중 적 지향의 譯經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직역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지식층 지향의 역경, 즉 인재양성을 위하여 역경(교재용)을 추진한 이가 金呑虛스님(1913~1983) 6)이다. 그는 1960년 초『六祖壇經』과『普照法語』를 현토역해한 이후 197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新華嚴經合論』,『楞嚴經』,『起信論』,『金剛經』,『圓覺經』,『四集』등 강 원교재를 완역 간행하기 시작하였는데, 방대한 양의 경전을 종단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개인적 차원에서 번역 간행하였다는 측면에서 커다란 意義가 있다. 이 時期가 조선조 간경도감(1期)과 일제시대(2期)에 이어 제3期 譯經時代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는 불교 전래 이래 한국불교 譯經史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경전을 현토역해하여 불교학의 발전과 인재양성, 그리고 교단의 정체성 확립 등에 많은 공헌을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역경한 경전을 직접 간행하여 실천적 모 습을 보인 呑虛스님의 譯經動機와 背景, 譯經經典의 종류와 底本의 특징, 譯 經의 관점과 문체, 그리고 그의 譯經이 갖는 역사적 意義 등을 중심으로 고찰 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의 역경은 단순히 불교경전을 번역하고자 하는 측면 뿐만 아니라 부처님 말씀을 잘못 전하면 안 된다는 사명감과 우수한 인재양성, 그리고 수 행의 사상적 바탕인 定慧雙修7)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또한 그의 역경의 특징은 다방면에 걸쳐서 많은 경전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韓國禪의 思想的 바탕이 되고 있는 禪계통의 불전과 몇 권의 禪語錄 등에 집중되고 있 다.그리고 譯經방법과 문체도 반드시 먼저 현토를 거친 뒤 철저히 의역을 배 제한 直譯을 택하고 있다. 이것은 경전 번역에 있어서 절대 私意가 들어가서 는 안 된다는 원전보호주의의 입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