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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顚映湖 大宗師의 抗日運動

  • 주제석전 영호대종사의 생애와 사상
  • 시대1917년
  • 저자오경후박사(한국불교선리연구원 선임연구원)
목차
위로 가기 石顚映湖 大宗師의 抗日運動
오경후박사(한국불교선리연구원 선임연구원)
Ⅰ. 서론
Ⅱ. 護法과 抗日運動의 基礎
Ⅲ. 朴漢永의 護法運動
Ⅳ. 朴漢永의 抗日運動
Ⅴ. 결론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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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5월 8일 일본 永源寺派 管長 蘆津이 한국불교의 일본화를 독 려하기 위해 朝鮮僧侶接見會를 열었을 때다. 그가 조선의 승려들이 모 인 자리에서 “조선선종은 臨濟宗인가 曹洞宗인가”를 묻자 박한영은“朝 鮮 禪宗은 全部 臨濟宗이며, 曹洞宗은 一切無하다.”고 단호히 대답했다. 박한영은 1910년 10월 6일 한국불교를 일본의 조동종에 연합시킨 賣宗행위를 잊을 수 없었다. 映湖 朴漢永(1870~1948)은 한국 근현대의 혼란과 격동기를 살다간 불교계의 선구자다. 白坡 亘璇(1767~1852)과 雪乳 處明(1858~1903)의 법을 잇고 敎學과 禪에 정통하여 錦峰·震應과 함께 三代 講伯으로 世稱하 던 인물이기도 하다. 동시대 인물이었던 이능화는 “그 마음을 조복하였으니 마치 百里奚가 소를 길들인 것 같고, 연설은 九方皐가 말을 고르는 법과 같았다.”고 했다. 아울러 “불교개량을 자기 임무로 하였으며, 세속의 전적까지 섭렵하느라 남은 힘 하나도 헛되이 버리지 않았다.” 고 박한영을 평가하였다. 그는 암울한 일제하에서 쇠락한 조선의 불교 를 쇄신하고자 維新運動을 펼치기도 했으며, 교육과 포교혁신을 위한 그의 노력은 주목할 만하다. 박한영의 호법운동과 항일운동은 조선 불교의 현실비판과 개혁의지만 큼이나 적극적이었다. 1910년대 한용운 등과 주도한 臨濟宗運動은 한국 불교의 전통을 수호하는 대표적인 사건이자 자주화운동이었다. 이후 그 가 참여한 불교운동은 임제종운동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일제의 침략과 탄압에 대항하여 한성임시정부 발족과 세계평화회 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일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그는 최 남선·정인보와 함께 우리 역사와 문화를 수호하는 일에도 적극적이었 다. 박한영에 관한 연구는 한국근현대불교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이나 가치만큼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의 불교사상이나 유신운동에 관한 단편적인 연구가 시도되었지만, 護法과 抗日運動에 대한 검 토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한국근현대불교사 연구가 부진을 면치 못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불교계 인사들의 항일운동 자료가 활발 하게 발굴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본 논문은 박한영의 호법과 항일운동을 검토하는 것이 목적이다. 다 만 박한영의 수행자적 면모와 불교철학이 일제하 호법운동과 항일운동 의 기초인 만큼 그의 선교학과 유신운동을 포함한 불교개혁운동의 면모 를 살피고 항일운동을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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