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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불교에서 한암의 역할과 불교사적 의의 - 만해 그리고 경허와의 비교를 통해

  • 주제석전과 한암, 한국불교의 시대정신을 말하다
  • 시대현대시대
  • 저자조성택 _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
목차
위로 가기 근대 한국불교에서 한암의 역할과
불교사적 의의
- 만해 그리고 경허와의 비교를 통해
조성택 _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
Ⅰ. 들어가는 말
Ⅱ. ‘궁핍한 시대’의 시인과 출가사문
Ⅲ. ‘마음의 자유’가 ‘행위의 자유’를 보장하는가?
Ⅳ. 결론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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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역사의 산물이면서 또한 역사를 형성해 가는 존재다. 따라서 한 인물을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데에는 당대의 역사에 대한 객관적 이해와 함께 그 인물이 겪어야 했던 역사적 경험을 추체험하는, 소 위 내재적 관점이 다 함께 요청된다. 이 점은 근대 한국불교의 연구 에 있어 특히 중요하다. 항일과 친일 혹은 개혁과 보수 등과 같은 도 식적인 관점만으로는 근대기 조선의 불교인들이 겪어야 했던 딜레마 적 상황을 온전하게 포착할 수 없다. ‘딜레마적 상황’이 의미하는 것 은 선택의 중지이거나 ‘우유부단함’이 아니다. 19세기 말 그리고 20 세기 초 조선의 불교인들은 늘 어떤 선택을 해야 했고, 그 선택의 배 경은 딜레마적 상황이었다는 의미다. 이미 다른 글을 통해 밝혔던 바 와 같이 당시 조선의 불교인들이 처했던 딜레마적 상황은 원천적으 로 일본의 종교가 불교라는 사실, 그리고 그 일본의 불교가 오랫동안 의 침체로 쇠약해진 당시 조선불교에 비해 대단히 ‘선진된’ 불교였다 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1 한편 근대기 조선의 불교인들이 처한 딜레마적 상황은 일본과 조 선, 식민지와 피식민이라는 정치적 구도에 한정되지 않는다. 부처님 의 정법이 ‘불변수연不變隨緣’하는 것이라면 지켜야 할 ‘불변’의 절대적 가치는 무엇이며 시절인연에 순응하는 ‘수연’의 가치는 무엇인가? 불교의 개혁은 민족의 존엄성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석가모니 부처님 이래의 정법을 복원하기 위한 것인가 등등 당시 조선의 불교인들은 시대의 질곡 속에서 늘 이와 같은 절박한 물음들 앞에 서 있었다. 그 리고 그들은 나름대로 성실하게 자신의 답을 선택하고 결단하였다. 근대기 조선의 불교인을 평가한다는 것은 그들이 내린 답의 옳고 그 름을 평가하는 일이 아니다. 그들은 왜, 어떻게 그 답을 선택하였는 가를 살펴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역사적 의미를 묻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일 것이다. 본고의 주제인 한암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바로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한다. 지금까지 학계의 한암에 대한 평가는 거의 비슷한 내용들이다. 이를테면 한암은 선승이면서 경전과 교학을 강조한 선교겸수론자이 며 보조 지눌을 근대적으로 계승한 인물이라는 점 등이다. 그러나 이 것만으로는 근대 한국불교에서 한암의 역할과 불교사적 의의를 말하 기에는 충분하지 못한 것 같다. 근대 한국불교의 연구에 있어 한암1876~1951에 관한 연구는 많지 않은 편이다.• 2 근현대 한국불교에서 한암이 차지하였던 위상과 역 할을 감안할 때 이러한 연구의 과소는 이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지금까지 근대불교 연구가 주로 ‘불교개혁’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일본불교의 도전에 대 한 조선불교의 응전 혹은 모방의 관점에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불교를 당시 조선불교가 처한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불교 지식인들의 노력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한암의 역할과 위 상은 근대 한국불교사에서 보다 중요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 다. 두 번째 이유는 한암의 불교사적 위치를 경허와의 관계를 중심으 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경허는 일반적으로 근대선종의 중흥조 로 일컬어지고 있는 만큼 한암은 경허불교의 연장선상에서만 논의되 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경허와 한암의 법맥관계는 생각만큼 밀착되 어 있지 않았다. 수행이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한암은 경허의 영향 권으로부터 벗어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시대를 바라보는 안목 또한 완전히 다르다. 그런 점에서 한암의 불교를 단순히 경허불교의 연장 선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학계 일부의 관점은 재고되어야 하며 경허 와 구별되는 한암의 불교를 좀 더 세심한 주의력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렇게 함으로써 근대 한국선종의 성격이 획일적인 단 일한 내용이 아니라 근대불교에 기대되는 다양성을 그 시작에서부터 이미 확보하고 있었음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지금까지 근대 한국불교의 연구에서 간과되었던 한 암의 역할을 다른 두 인물과의 대조를 통해 부각시켜 보고자 한다. 우선 만해와 대조시켜 보고자 한다. 한암1876~1951과 만해1879~1944는 같은 시대를 살았고, 둘 다 불교를 통해 자신의 삶을 완성해 간 사람 들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선택은 극과 극이 라 할 만큼 대조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암의 삶을 새롭게 이해하 는 단초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암과 대조하고자 하는 또 다른 인물은 경허1846~1912이다. 두 사람 모두 간화선수행을 강조 한 선사이면서 시대를 바라보는 안목과 그 행적은 크게 대조된다. 선종이라는 전통을 공유하는 가운데 두 인물의 서로 다른 착목 지점들 을 살펴봄으로써 근대불교사에서 경허와 구별되는 한암 고유의 역할 과 위상을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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