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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 비구니 선수행 양상과 印可에 대한 문제

  • 주제용성과 한암, 일제강점기의 어둠을 밝히다
  • 시대근대기
  • 저자강문선(혜원)
목차
위로 가기 근대 한국 비구니 선수행 양상과 印可에 대한 문제
강문선(혜원)
Ⅰ. 서언
Ⅱ. 선교겸수와 인가
1. 묘리 법희(妙理 法喜)
2. 화산 수옥(華山 守玉)
3. 무변 세등(無邊 世燈)
Ⅲ. 수선과 인가
1. 만성(萬性)
2. 담연 선경(湛淵 禪敬)
3. 응민(應旼)
Ⅳ. 화두참구와 게문(偈文)
1. 하엽 일엽(荷葉 一葉)
2. 혜일 대영(慧日 大英)
3. 본공 계명(本空 戒明)
4. 백련 윤호(白蓮 輪浩)
5. 혜전 창법(慧田 昌法)
Ⅴ. 결어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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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1876-1945)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至難의 시대였다. 한국불교 역시 일본불교의 도래와 이로 인하여 교단내부는 왜색불교의 체제와 조선불교의 순수성을 계승하려는 체제가 대응하여 교단은 혼돈과 갈등으로 연속되었다. 그중 선원의 수좌들은 식민지 불교의 폐해로부터 한국전통의 불교를 수호하려는 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따라서 승려본 연의 구도는 주로 산중에서만이 실현되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이지만 종단의 승려제도나 교육수행을 위해 선원이나 강원이 시설되고 이는 거의 비구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비구니만의 시설은 전무하였다. 비구니 강원과 선원의 시설은 1950년대 들어서 부터다. 그 이전에는 본산에 달린 말사암자에서 비구니들이 모여 주로 화두참구를 하고 대중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선방이 형성 되었고 경학은 비구강원에 다니거나 나중에 비구니강원이 형성되어도 강백은 비구스님을 모시고 一代時敎를 講學 하고 수료하는 것이다. 근대기 비구니들의 불교교육이나 선수행은 극히 어려운 실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중국선종계에서의 潙山문하의 劉鐵磨 , 俱 胝화상을 분발시킨 實際尼 와 같은 비구니납자들이 나왔으며 그들은 ‘깨달음’을 체득하여 선문답을 통하여 점검을 받고 선지식에게 인가와 전법 게를 받은 비구니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후, 후학 니승납자들을 提接, 지도하고 비구니선원을 각처에 개설 하여 선방운영, 가람수호를 하였으며, 비구니강원 을 개설하여 강백으로서 강의를 하여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다. 현재 비구니 강원이나 선원은 이러한 비구니들의 수행의 노고가 기

초가 된 것이다. 조선말, 일제시대에서 현대를 넘어오면서 혼란의 소용돌

이에 있는 교단이지만 당시의 이러한 비구니들의 수행을, 오늘날 교단이 <승려법>으로 지정하여 필수로서의 승가대학의 교학과정(4년)과 수선과 정(2년)을 履修하고 이후 자율적으로 선방에서 여러 해를 보내는 비구 니들의 참선수행과 비교해 볼 때, 근대기의 비구니납자와 같은 니승이 전무하다고 볼 수 있겠다. 구도의 歷程, 깨달음의 체득, 선지식의 인가와 전법게, 禪匠의 직접적인 遺訓, 깨친 비구니의 후학들의 제접, 비구니의 결제법어 등은 계승되었다기보다는 정체되거나 소멸된 실정이라고 보지않을 수 없다. 이러한 양상의 형태는 그 원인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에서우선 본 논문에서는 근대기(1876-1945)를 중심으로 수선에 몰두하여 선장에게 인가를 받았다는 비구니 납자들만을 선정하여 고찰하겠다. 이러한 문제제기의 논구 형태는 먼저 선교를 겸수하고 수선에 몰두하여 선장으로부터 인가와 전법게⋅당호 등을 받은 비구니, 교학의 배경은 전혀없지만 수선만으로 선장들과 자유롭게 問答商量(법거량)하고 인가를 받은 비구니, 또한 화두참구로서 오로지 수행하고 선문답을 한 사실은 나타나지 않지만 선장으로부터 인가와 게문⋅당호를 받았다는 비구니 등이렇게 세 그룹으로 나누어 비구니납자의 선수행 양상과 인가의 형태를 究明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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