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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용성 율맥(律脈)의 성격 및 전개

  • 주제용성과 한암, 일제강점기의 어둠을 밝히다
  • 시대1892년
  • 저자이자랑
목차
위로 가기 백용성 율맥(律脈)의 성격 및 전개
이자랑
Ⅰ. 서론
Ⅱ. 백용성의 전계사
Ⅲ. 대은계 율맥에 대한 용성의 인식
Ⅳ. 용성 이후 대은 율맥의 전개
Ⅴ. 결론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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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이자 독립 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백용성(白龍城, 1864-1940)은 자신이 계승한 대은계의 율맥 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대은계의 율맥이란 1826년에 당시 계학이 실전(失傳) 상태에 놓인 현실을 염려하며 대은낭오(大隱朗旿)가 서상수계(瑞相受戒)를 통해 회생시킨 율맥이다. 서상수계는 수계해 주는 계사 없이 스스로 서원을 세워 수계하는 것으로, 범망경에서는 천리 안에 수계해 줄 계사가 없다면 불보살의 형상 앞에서 수계해도 된다고 한다. 단, 반드시 호상(好相)을 보아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고 있다. 범망경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서상수계를 한 대은의 율맥은 이후 금담, 초의, 범해 등을 거치며 용성으로 이어졌다. 용성은 이러한 자신의 율맥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꼈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 적극적으로 전계해갔다. 그런데 이와 달리 일각에서는 대은계가 서상수계라는 점에 의문을 갖고 중국으로 건너가 계를 받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 대표가 만하승림(萬下勝林)이다. 만하는 1892년에 청으로 건너가 창도한파(昌濤漢波) 율사로부터 대소승계를 받고 율맥을 전수해 오게 된다. 1892년은 용성이 대은율맥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이기도 하다. 대은의 서상수계후 70여 년이나 지난 시점에 중국으로 건너가 수계를 받고 돌아왔다는 것은 당시 승려들의 의식 속에 중국에서 받아온 율맥이야말로 정통이라는 생각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물론 사대주의적 발상에 기인하는바가 크겠지만, 그 배경에는 계단이나 수계법의 미비한 정비 등 중국에 서의 수계를 갈망하게 만든 요인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하튼이 시기에 교단 내에는 11계통 정도의 율맥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중국의 승려로부터 전수한 율맥이라는 점을 볼때 당시 중국 율맥에 대한 동경이 매우 강렬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용성은 자신의 율맥이 조선에서 조선의 승려에 의해 이루어진 자생적 서상수계라는 점에 대해 매우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용성에게 있어 율맥은 승려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자, 험난한 시대 속에서 한국불교의 전통성을 보존하고 나아가 민족의 주체성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용성의 율맥 검토는 승려이자 독립 운동가로서의 용성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주제라고 생각된다.

대각사상연구원의 발족 후, 용성에 관해서는 이미 다양한 시각에서 연구가 진행되어 왔으며, 율맥에 관해서도 몇몇 연구들이 상세한 고찰을 하고 있다. 이들 연구로 인해 많은 점이 밝혀졌지만, 자료의 부재, 각사찰의 호계첩문과 문중 차원에서 정리한 고승들의 행장이나 연보의 기록 간에 차이가 심해 아직 명확하지 않은 부분도 많은 것 같다. 이러한 차이를 중심으로 그 원인이나 배경을 세심하게 생각해 갈 때 용성의 율맥 역시 보다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생각된다.

본고는 세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용성 율맥의 성격과 전개를 다루고 있다. 첫째, 백용성의 전계사 문제이다. 용성 스스로 자신의 선계사를 선곡이라 언급하고 있지만, 선곡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 동안 적지 않은 논의가 있어 왔다. 특히 제산이라는 승려와의 동일인물 가능 성이 제기되거나 부정되거나 했는데, 이 점과 관련하여 범해와 용성을 잇는 중간 인물로서의 제산이라는 인물에 대한 재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둘째, 대은계 율맥에 대한 용성의 인식이다. 용성이 계승한 대은계 율맥의 내용 및 이에 대한 용성의 인식을 중국 승려와 나눈 문답을중심으로 생각해 보았다. 셋째, 용성 이후 대은 율맥의 전개 문제이다.

수계 후 용성의 전계 활동에 대해 살펴보고, 대은계 율맥에 대한 용성의 자부심과 열성적인 전계 활동에도 불구하고 실제 그의 율맥이 제자들 대에 이르러 적극적으로 계승되지 못한 점에 대해 고찰하였다.

기존의 연구 성과를 크게 뛰어넘는 내용은 아니지만, 용성의 율맥 연구에서 중요한 문제임에도 기존의 연구에서 충분히 다루어지지 못한 몇가지 점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향후 좀 더 깊이 있는 논의를 불러일으키는데 일조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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