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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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龍城의 禪農佛敎에 대한 再照明
- 주제용성과 한암, 일제강점기의 어둠을 밝히다
- 시대1800년대
- 저자이수창
목차
위로 가기 白龍城의 禪農佛敎에 대한 再照明단사적 측면을 중심으로
이수창
I. 머리말
II. 四依法과 禪農佛敎의 傳統
1. 出家者의 生活原則
2. 禪農佛敎의 傳統
III. 自立經濟를 위한 禪農佛敎
1. 禪農佛敎의 槪念
2. 禪農佛敎와 寺刹經濟
3. 白鶴鳴의 禪農佛敎
4. 白龍城의 禪農佛敎
Ⅳ. 맺음말
상세소개
위로 가기白龍城(1864-1940)에 대한 연구 성과는 많이 축적되었다. 그것은 대각사상연구원에서 학술지 大覺思想을 꾸준히 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용성의 禪農佛敎에 대한 연구는 다른 연구 분야에 비해 상대적 으로 미진한 편이다. 지금까지 백용성의 선농불교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승단의 개혁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런데 백용성의 선농불교는 교단사적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선농불교는 불교의 계율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백용성의 선농불교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龍夏(1892-1980)의 禪農觀 이다. 이 글은 河東山(1890-1965)의 요청에 의해 작성된 것이다. 그 이
후 백용성의 선농불교에 대한 최초의 학술적 연구는 김광식이 대각사상
제2집(1999)에 발표한 백용성스님의 선농불교 2) 라는 논문이다. 그는 이듬해 용성선사의 선농불교 라는 논문을 송암지원이 엮은 노동의 가치, 불교에 묻는다에 게재했다. 또한 그는 白鶴鳴(1867-1929)의 선농불교에 대한 두 편의 논문도 추가로 발표했다. 김광식은 이러한 논문들을 통해 백용성이 선농불교의 嚆矢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김호 성은 근대 한국의 선농불교에 대한 재조명 이라는 논문에서 반론을제기했다. 김호성은 선농불교의 개념을 정리한 후, 근대 한국의 선농불교의 효시는 鶴鳴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상반된 결론은 선농불교에 대한 개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외에도 백용성의 선농불교와 관련된 논문 두 편이 발표되었다. 여기서는 이러한 선행연구들을 바탕
으로 교단사적 측면에서 백용성의 선농불교에 대해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