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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신사리신앙과 상원사 적멸보궁
- 주제진신사리신앙과 상원사 적멸보궁
- 시대현대시대
- 저자김 흥 삼 (강원대학교 강사)
목차
위로 가기 진신사리신앙과 상원사 적멸보궁김 흥 삼 (강원대학교 강사)
Ⅰ. 서론
Ⅱ. 진신사리신앙의 전개와 靈驗
1. 진신사리신앙의 기원과 전개 2. 진신사리신앙과 靈驗 (이상 本號)
Ⅲ. 적멸보궁의 의미
Ⅳ. 상원사 적멸보궁의 진신사리
Ⅴ. 결론
상세소개
위로 가기우리나라의 산들은 각각의 형상적 특색에 의하여 그 나름대로의 고유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산과 관계를 맺어온 인간들이 여기에다 의미를 부여하였다. 오대산은 예로부터 靈山으로 여겨져 왔으며, 어떠한 재앙이 닥쳐도 안전한 땅이라고 믿어져 왔다. 그 산의 한가운데에 바로 적멸보궁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이 태백산맥에 속하는 오대산의 주봉인 비로봉에서 흘러내린 산맥들의 중앙이며 오대산 신앙의 중심이다. 상원사를 지나 서북쪽으로 약 1.5㎞ 거리에 중대 향각인 노전이 있고 다시 600m~700m 산길을 올라간 곳에 적멸보궁이 위치한 다. 이 寂滅寶宮에 자장이 당에서 가지고 온 眞身舍利를 모심으로써 신성한 장소로 여겨져 불교의 성지로 발전하였다. 이에 수많은 스님과 불자들에게 동경의 땅이 되어 끊임없이 기도케 하는 경배 대상의 역할을 다해 왔다.
그러나 진신사리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오대산 신앙은 신라의 자장이 오대산에 형적을 남긴 이후 신라 중대에서부터 하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간을 걸쳐 형성되어 다양한 불교신앙이 혼재된 중층적 구조를 이루며 존재해 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후대의 사실이 반영되는 사적도 있고, 후대의 것이 앞으로 끼여들기도 하여 매우 복잡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오대산과 관련된 신앙을 연구할 때, 사료적 검토가 충실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기록 당시에 史實로 전승되어 역사가가 그것을 인정하고 서술하였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오대산과 관련된 자장에 관해서 그러하다. 자장과 이들 신앙이 연결된 게 전혀 근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며, 왜 자장과 관련을 시켰는지에 대해 오히려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장은 우리나라 진신사리신앙의 역사를 말할 때 가장 먼저 거론해야 할 인물이다. 佛舍利信仰의 鼻祖로 불리는 그는 삼국통일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던 신라불교를 크게 중흥시켰으며 당에서 사리 1백과를 모시고 와황룡사·태화사·통도사 등의 사찰에 봉안하면서 우리나라 사리 역사의 서장을 열었던 인물이다. 또한 5대 적멸보궁은 모두 자장이 당나라에서 모셔온 불사리와 관련된 기록이 있고 연관된 전설이 있으며, 불도들과 세인들이 이를 믿고 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장과 진신사리의 관계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하여 연구자들은 진위를 가려내려는 학문적 분석의 대상으로 취급하여 윤색되었다고 의심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자장을 중심으로 일어난 모든 것이 훗날 윤색된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자장이 뿌린 씨가 싹트고 가지치면서 오늘날까지 이르며 성장해 온 것이다. 자장이 적멸보궁에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는 그 역사적 사실관계 보다는 승려나 신자들이 자장이 진신사리를 문수로부터 전해 받아 우리나라에 전해 온전히 이어져오고 있고 또 다들 그렇게 믿었다는 데에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결국 우리가 의미를 두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자장과 진신사리를 관련시켰다는 점이다.
본고는 먼저 진신사리신앙의 기원과 전개를 살펴 역사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동시에 시대마다의 특징을 살피고, 이 신앙을 유지시킬 수 있었던 영험에 대하여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적멸보궁이란 어떤 곳이며, 상원사 적멸보궁의 사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이해되어왔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사실나열과 문제제기에 그친 감이 적지 않다. 이는 시간이 촉박하여 제대로 정리할 여유가 없었고, 비전 문가로서 능력의 한계를 갖고 쓸 수밖에 없어서 나타난 문제이므로 많은 양해를 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