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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臺山于洞水 儒敎祭儀

  • 주제한강의 시원지 오대산 우통수
  • 시대조선시대
  • 저자김 경 남 (한중대학교 전통문화학부 교수)
목차
위로 가기 五臺山于洞水 儒敎祭儀
김 경 남 (한중대학교 전통문화학부 교수)
Ⅰ. 머리말
Ⅱ. 五臺山于洞水龍神祭의 구성
3. 五臺山于洞水龍神祭 제물
4. 五臺山于洞水龍神祭의 笏記 및 祝文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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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제사문화는 삼국시대에 들어서야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의례가 왕가에서부터 시작되어, 고려 후기에 이르러 성리학과 함께 유입된 주희의 『가례』와 안향(1243~1306) 의 『주자전서』를 통해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면 왕실은 물론 민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형태의 제사들이 행하여졌다. 조선시대에는 태종대 중반 이후 사전의 정비를 실시하여 고려시대와는 다른 형태의 구분이 이루어졌고 국가제 사의 횟수 및 대상이 대폭 확대되었다. 이 과정은 세종대에 중국 고제(古制)에 대한 학문적 이해를 바탕으로 역대의 예서를 검토하면서 심화되었는데 그 일차적 성과는 『세종실록』 오례로 나타났고 성종대에 그를 수정한 『국조오례의』가 편찬됨으로써 대체적인 완성을 보았다.

조선말기 이후 우리의 제사 관념은 기독교의 도입으로 큰 변화가 나타난다. 특히 일제 침략으로 조선 왕조가 무너지고 왕조를 지탱했던 양반 계층이 몰락하자 양반 중심의 많은 예법이 동시에 붕괴했고, 그에 따라 유교식 제사 또한 그 사회적 존재 가치와 의미를 많이 상실하게 되었다.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상 예전(耤田)조에 종묘(宗廟)의 제사에 쓰는 서직(黍稷)과 군국의 재용이 모두 농사에서 나오는 것이며, 민생이 이로써 풍성하게 되고 풍속이 이로써 순후하게 되는 것이기에 농사는 만사의 근본이고 적전은 권농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이는 농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와 함께 농사와 관련된 제사인 풍운뇌우(風雲雷雨)도 중사에 배치 하였다. 바람ㆍ구름ㆍ우레ㆍ비는 오곡을 살찌게 하고 품류를 이루게 하는 것이어서 만물에 미치는 혜택이 지극히 큰 것이니 남쪽에 제단을 설치하고, 유사가 때에 맞추어 제사를 지낸 다고 하였다. 아울러 고려시대에도 고려사에 의하면 풍사, 우사, 운사로 각기 구분되어 준행하면서 소사에 배치하였다. 이러한 전통적 제의는 현재에는 기록에만 남아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다시 이러한 의미의 제사를 복원하거나 그 규범을 본받고자 한다면 이러한 전거에 의한 제의의 구성이 필요하리라 하겠다. 따라서 오대산 우통수와 관련된 제의도 응당 여러 유교적 제의의 전거에 따라 설행하여 치제하는 것이 전통의 제례의 법을 존중하고 전통의 계승을 도모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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