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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지리학적 관점에서 본 우통수와 한강
- 주제한강의 시원지 오대산 우통수
- 시대현대시대
- 저자이 지 누(기록문학가)
상세소개
위로 가기한강의 발원지에 대한 논란은 1981년 3월에 대두되었다. 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연구원이었던 이형석은 일간지(일간스포츠 1981년 3월 6일자 참조)에 한강에 대한 연재를 시작하며 발원지로 어룡산(魚龍山) 골짜기의 고목샘을 지목한 것이다. 그 후 어룡산은 금대산 (1,418m) 혹은 금대봉으로 확인 되었다. 이에 1986년, 태백문화원의 김강산에 의해 고목샘 보다 좀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제당궁샘이 발원샘으로, 검용소는 발원지로 제안되었다.
이는 1918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행된 근세한국 1/50,000 지형도의 하천 유로에 대한 도상 계측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오대산의 우통수를 비롯하여 삼척군 하장면, 금대봉과 잇대어 있는 대덕산(1,307m)과 같은 곳들이 발원지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형석과 김강산의 위와 같은 제안을 2000년 5월 한강의 관리자인 건설교통부에서 받아들여 한국하천일람에 태백시 금대산 북쪽기슭으로 발원지를 공표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는 지리학적인 관점에 충실한 것일 뿐 역사·문화적인 관점을 도외시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이는 오대산 서대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샘으로 전해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샘으로 문헌자료에 나타나는 최초의 기록은 조선 태종 4년 인 1404년의 일이다. 비록 지리지가 아닌 양촌(陽村) 권근(1352~1409)이 쓴 「오대산 서대 수정암 중창 기(五臺山西臺水精菴重創記)」이지만 그곳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