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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상원사 영산전 존상 연구
- 주제오대산 상원사 영산전 존상 연구
- 시대현대시대
- 저자이분희(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상세소개
위로 가기나한은 석가여래의 제자인 동시에 성불할 존재로서 존숭(尊崇)의 대상이다. 중국에서는 당말 오대(唐末五代)에 선종의 흥기와 더불어 조사(祖師)숭배가 성행하 면서 조사와 나한을 동일시하고, 승려의 모습을 한 나한상을 조성하여 조사처럼 모셔지는 것이 유행하였다.고려시대 나한신앙은 국왕이 직접 나한재에 참석할 정도로 성행하였으며, 기록으로 보아 주로 오백나한신앙이 유행하였음을 알 수있다. 나한재의 개설 목적은 주로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것으로 기우제와 관련된 것이 많았다.
조선시대에는 십육나한이 주요 신앙대상이 되었다. 또한 나한재는 수륙재와 함께 거행되어 진혼의식으로도 이루어졌는데, 이처럼 조선시대의 나한신앙은 추복기능과 함께, 재앙으로부터 해방과 장수를 빌며 극락왕생과 깨닮음의 성취도 비는 등 폭넓게 전개되었다.
조선전기 시기에 오대산 상원사에도 나한이 주요 신앙대상으로 모셔졌는데, 이는 세조가 병이 나서 대왕대비를 중심으로 신미(信眉)와 학열(學悅)에게 명하여 1466년 대대적으로 상원사를 중건할 때 나한전을 건립하였다는 기록을 통해서알 수 있다. 이후에도 상원사 문수전 문수동자상 중수발원문(1599년)과 「상원사 중창기」의 나한전 중수 기록(1646년) 등을 통해서도 나한전이 계속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즉 오대산 상원사는 1466년 중창 때부터 16나한을 조성해 나한 전에 봉안하였고, 1599년에는 16나한상을, 1646년에는 나한전을 중수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기인가 나한전과 봉안된 나한존상이 소실되었으므로, 1885년 즈음해서 예천 운복사에서 존상을 이운해와서 보수와 개채를 하고 영산 전에 봉안하였다.
오늘 발표할 존상들은 현 상원사 영산전에 봉안되어있는 석가삼존과 16나한상 이다. 이 존상들은 재질이 소조와 목조로 구별되며, 1711년 이전에 제작된 상과 1711년작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이 영산존 존상들은 이력을 알 수 있는 복장기 록들이 잘 남아있으며, 소조로 만든 상들은 제작시기가 조선전기로 올라가는 양식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그러므로 본 발표에서는 상원사 영산전 존상들에 대해 현황과 도상, 제작기법, 그리고 양식적 특징을 분석하여 제작시기를 살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