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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오대산의 왕실불교와 원당의 운영

  • 주제조선시대 오대산의 왕실불교와 원당의 운영
  • 시대조선시대
  • 저자탁효정(순천대학교)
목차
위로 가기 조선시대 오대산의 왕실불교와 원당의 운영
탁효정(순천대학교)
1. 머리말
2. 오대산 왕실원당의 설치 배경
3. 오대산에 설치된 역대 왕실원당
4. 맺음말: 오대산 왕실원당의 성격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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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 불교가 유입된 후 기존의 토속신앙인 산악숭배와 대승불교의 보살 신앙이 결합해 보살상주신앙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불교문화가 탄생하였다. 산지가 많은 한중일 삼국에서는 고대부터 명산대천(名山大川)의 신령을 숭상하는 산악 신앙이 발달했는데, 보살신앙의 유입과 함께 영험한 명산에 보살들이 상주하고 있다는 신앙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대표적인 보살상주처는 관세음보살의 상주처인 보타낙가산, 문수보살의 오대산, 담무갈보살의 금강산, 보현보살의 아미산, 지장보살의 구화산이다.

한국에서는 보살상주신앙 중에서도 특히 금강산신앙과 오대산신앙이 크게 유행했다. 담무갈보살의 상주처인 금강산은 중국인들조차 중국이 아닌 고려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유일무이한 성지로 한중일 삼국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고, 오대 산은 신라의 고승 자장이 신라 오대산에 불사리를 봉안하면서 또 하나의 문수상 주처로 자리잡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화엄학의 유행과 함께 문수신앙이 크게 흥성하였는데 수당대에 이르면 지역 신앙의 형태를 넘어 범국가적인 신앙으로 확대 되었다.  이 시기에 당에서 유학을 하던 자장이 오대산에서 직접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이 신앙을 신라로까지 전래한 것이다. 이후 오대산의 보살상주신앙은 다섯 봉우리마다 관음보살, 지장보살, 대세지보살, 오백아라한,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불교성지라는 의미로 확대되었다. 

오대산신앙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그 명맥을 계속 이어나갔다. 흔히 조선시대 오대산은 세조의 기도처로 널리 알려졌지만, 최근 상원사 불상을 수리하는 중 다수의 복장발원문이 발견되면서 조선전기는 물론 조선후기까지 오대산이 왕실의 기도처로 꾸준히 역할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조선은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내세운 나라였지만 왕조가 지속되는 내내 조선 왕실은 전국 사찰에 원당을 설치해 왕실의 안녕과 국가의 평안을 발원했다. 특히 오대산을 비롯한 명산대찰의 원당 설치는 조선말까지 계속 이어졌는데, 여기에는 왕실 내에서 500여년간 끊어지지 않은 불교신앙, 국가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명산대찰에 기도를 올리던 전통, 내세에 관한 유교의 종교적 한계 등의 요인들이 작용하였다. 무엇보다 고대부터 이어져온 오대산에 대한 뿌리 깊은 신앙이 조선 사회 전반에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500여년이 흐르는 동안 오대산에 설치되는 원당의 내용과 특징은 조금씩 변화하였다.

본고에서는 조선초부터 조선말에 이르기까지 오대산에 설치된 왕실 원당을 설치 과정을 살펴보고, 조선 왕실이 어떤 목적과 내용으로 오대산에 원당을 설치하 였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오대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조선 왕실불교의 특징과 성격을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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