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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문수전 목조문수보살좌상의 제작자와 도상적 연원
- 주제상원사 문수전 목조문수보살좌상의 제작자와 도상적 연원
- 시대신라시대
- 저자손영문(문화재청)
목차
위로 가기 상원사 문수전 목조문수보살좌상의 제작자와 도상적 연원손영문(문화재청)
1. 머리말
2. 팔도도총섭 체제 개편과 조각승들의 대활약
3.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상의 발원자와 제작자 그리고 작품
4. 문수보살의 도상 전통과 상원사 문수보살의 도상적 전거
5. 맺음말
상세소개
위로 가기오대산은 신라시대 자장율사에 의해 文殊眞聖이 상주하는 곳으로 믿어졌고, 상원사는 지금껏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수성지가 되어 왔다. 상원사는 성덕왕 4 년 신라왕자 寶川과 孝明에 의해 개창되었고, 처음 이름은 진여원(眞如院)이었다.
형 보천은 중대 남쪽 진여원 터에 아래 청련이 핀 곳에 암자를 짓고 살았고, 동생 효명은 북대 남쪽 산 끝에 청련이 핀 것을 보고 암자를 짓고 살았다고 하며, 두 형제는 골짜기 물을 길어다가 차를 달여 1만 진신의 문수보살에게 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조선시대 상원사는 세조의 원찰로서 여러 번 行幸한 기록이 世祖實錄에 보이 고, 특히 상원사 행행 중 문수동자와의 奇緣으로 말미암아 병이 치유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상원사에 자신이 친견한 문수동자의 眞像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목조문수동자상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상원사 문수전의 불전형 불감(佛龕) 내에는 세조가 직접 친견한 진상을 조각한 문수동자상과 함께 한 구의 목조문수보살좌상이 나란히 봉안되어 있다. 이 목조 보살좌상은 1661년 진여원의 세 번째 중창 때 만들어진 진여원의 堂主, 즉 본존 문수보살상인데, 불상의 복장에서 불상의 조성 및 중수과정을 알 수 있는 발원문과 불상의 심장에 해당하는 후령통, 법사리로 납입된 경전류 등 다양한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복장유물은 불상의 조성 및 중수과정, 그리고 불복장 의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며, 서지학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자료들로 평가받고 있다. 상원사 문수전의 불전형 불감(佛龕) 내에는 세조가 직접 친견한 진상을 조각한 문수동자상과 함께 한 구의 목조문수보살좌상이 나란히 봉안되어 있다. 이 목조 보살좌상은 1661년 진여원의 세 번째 중창 때 만들어진 진여원의 堂主, 즉 본존 문수보살상인데, 불상의 복장에서 불상의 조성 및 중수과정을 알 수 있는 발원문과 불상의 심장에 해당하는 후령통, 법사리로 납입된 경전류 등 다양한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복장유물은 불상의 조성 및 중수과정, 그리고 불복장 의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며, 서지학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자료들로 평가받고 있다.
1661년에 제작된 문수보살상은 진여원, 즉 상원사의 삼중창 때 조성된 문수상 이다. 이 논고에서 가장 먼저 고려했던 점은 왜 삼중창 때 새로운 문수보살상을 다시 제작했는가 하는 것이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상원사는 문수신앙의 본거 지였기 때문에 당연 문수보살상이 상원사의 主尊으로 존재하였을 것인데, 문수보 살의 重修도 아니고 신 조성을 하게 되는 그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느 정도 해결된다면 그 다음 단계로 이 보살상 제작에 참여한 사람과 조각승의 활동과 이력, 문수보살상의 미술사적 의의 등으로 순차적으로 풀어나가면 될것이다.
현재 상원사 문수보살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두 손으로 如意를 잡았으며 이중착의법으로 옷을 입고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발원문이나 기록을 통해 존명이 밝히지 않으면 문수보살로 특정하기 어려운 면이 없지 않다. 다행히 발원문을 통해 문수보살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 오대산 진여원의 堂主, 곧 主尊으로 조성된 상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보살상은 조선후기 조각승이 도상적 인식 하에서 조성된 문수보살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이와같은 도상적 특징을 갖추고 있는 여타의 보살상의 존명을 추정하는데 있어 도상적 근거자료를 제공하기에 더욱 중요한 도상적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본 글에서는 상원사 문수보살상처럼 임진·정유재란 이후 약 100년간 전국 도처의 수많은 불사에서 전대미문의 승려장인들이 배출되어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불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진여원의 삼중창도 이러한 역동적인 역사적·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일어난 불사이다. 그리하여 우선 이것을 가능하게 한 사회적· 제도적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찾아보고, 이어서 이미 세조대 왕실 발원으로 제작한 저명한 문수동자상이 상원사의 터줏대감으로 자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문수보살상을 제작하게 되었는가 하는 그 이유와 상원사 문수보살상을 조각한 수조각승 회감의 작품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상원사 문수보살상이 지니고 있는 도상적 특징이 어떤 역사적, 도상적 전통과 연결되고 있으며, 당시 조각승이나 불화승들이 인식했던 문수보살의 도상은 어떤 것이었는지 도상의 典 據가 경전과 同·通時的 조상사례 분석을 통해 살펴보고, 끝으로 문수보살 제작에 중요한 소임과 역할을 했던 승려들의 동향을 살펴보고 글을 마감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