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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 스님의 도참설, 그 배경과 의의
- 주제오대산 화엄의 특징과 탄허의 원융사상
- 시대현대시대
- 저자김성철ㆍ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
목차
위로 가기 탄허 스님의 도참설, 그 배경과 의의김성철ㆍ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
Ⅰ. 한국의 정치적 암흑기에 풍미했던 탄허의 도참설
Ⅱ. 탄허의 출가 전 학문적 이력(履歷)과 도참설의 근거
Ⅲ. 탄허의 도참설, 그 허(虛)와 실(實)에 대한 종합적 분석
Ⅳ. 탄허의 도참사상
-‘선의(善意) 가득한 당위(當爲)의 미래학’
상세소개
위로 가기노자(老子)는 말한다. “학문을 하면 나날이 늘어나고, 도를 닦으면 나날이 덜어낸다.” 이런 통찰은 불교수행에도 적용 가능하다. 불교를 선(禪)과 교(敎)로 나눌 때 선이 ‘나날이 번뇌를 씻는 수행’이라면 교는 ‘나날이 지식을 쌓는 공부’다. 교는 선을 위한 지도(地圖)이며 나침판이다. 선교겸수(禪敎兼修). 선과 교학을 함께 닦는다는 뜻이다. 가장 이상적인 불교 수행이지만 지난(至難)한 길이다. 평생을 참선 수행에 매진했던 철두철미한 선사이면서, 불교교학은 물론이고 사서삼경과 노장사상, 역사와 민족종교, 음양오행과 풍수지리를 모두 하나로 꿰뚫는 혜안(慧眼)을 갖춘 분이 계셨다. 바로 탄허(呑虛: 1913~1983) 스님이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불교사상사 2천년을 통틀어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정신적 위인(偉人)’이었다. 스물을 갓 넘어 출가하여 3년간 묵언정진하면서 참선을 시작한 이래 평생 선 수행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불전의 번역과 강설, 교육과 교화의 이타행을 시현하셨다. 스님의 수행에 대해서 제자들은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자정에서 동이 틀 때까지 매일 새벽은 물론이고 일상생활 역시 참선과 삼매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전언(傳言)이다. 그야말로 일행삼매(一行三昧)의 삶이었다. 이와 아울러 스님은 불교인재를 양성하고 한문불전을 번역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화엄경과 관련해서는 이통현(李通玄: 635~730)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40권을 비롯하여 총 287여권에 이르는 문헌들을 취합하여 현토, 번역, 주석하였다. 27세가 되던 해에 스승인 한암(漢巖: 1876~1951) 스님으로부터 신화엄경합론의 현토 간행을 부촉받은 후(1939), 44에 번역에 착수하여(1956) 11년이 지난 55세가 되던 해에 완성하고(1967) 다시 8년이 지난 63세에 세상에 선을 보인(1973) 참으로 지난한 작업이었다. 이 이외에 육조단경(1960), 보조법어(1963) 그리고 서장, 도서, 절요, 선요의 사집(四集)과 능엄경, 금강경, 기신론, 원각경의 사교(四敎)(1980), 치문과 초발심자경문(1981), 주역선해(1982) 등의 역주본을 속속 출간하였다. 노자의 도덕경(1983), 선종영가집(2001)과 발심삼론(2001), 그리고 장자의 남화경(2004)의 역주본은 스님이 돌아가신 이후에 간행되었다. 역주의 양과 깊이의 모든 면에서 가히 초인적인 작업이었다. 후학 양성을 위한 ‘원력(願力)의 이타행’이었다. 탄허 스님은 세속의 변화에 대해 깊이 통찰하면서 우리나라와 인류의 미래와 관련하여 많은 예언을 남겼다. 스님은 주역과 음양오행설에 근거하여 김일부(金一夫: 1826~1898)의 정역(正易)을 해석함으로써 정치와 사회는 물론이고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까지 예측하였다. 신라 말의 도선(道詵: 827~898)국사나 여말선초의 무학(無學: 1327~1405)대사의 예에서 보듯이 고승들에게 예언이나 도참은 여기(餘技)와 같았다. 탄허 스님의 경우도 그랬다. 그러나 세속의 길흉화복에 조바심치며 희로애락의 삶을 사는 일반대중들은 스님의 학문이나 선지(禪旨)보다 예언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스님 역시 당신의 예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