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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스님의 인재양성과 교화활동

  • 주제탄허대종사의 인재양성과 교육이념의 시대정신
  • 시대1994년
  • 저자윤선태ㆍ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
목차
위로 가기 탄허 스님의 인재양성과 교화활동
윤선태ㆍ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
Ⅰ. 머리말
Ⅱ. 전통의 계승, 한암을 찾아가다
Ⅲ. 교육결사, 불교를 정화하고 혁신하다
Ⅳ. 맺음말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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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주제를 연구할 때마다 필자는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점 때문에 항상 기쁨으로 충만 했었다. 그런데 이번만은 달랐다. 탄허(呑虛 1913~1983) 스님이 “요즈음의 학문은 기능에만 치우쳐 있다. 종지(宗旨)가 없는 학문은 죽은 학문이다. 인생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며 근대의 학문과 교육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신 대목을 읽고, 나름 후진양성을 위해 노력한 다고 자부했던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한없이 작아진 경험을 했다. 탄허 스님을 생전에 뵙지 는 못했지만 그의 법어들은 필자의 공부와 교육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셨다. 주지하듯이 탄허 스님은 유자(儒者)로서 출발해 도교에서 도를 구하다 1934년 스물둘 약관 의 나이에 불교에 귀의하였다. 당시 쇄도하던 신학문 대신에, 청년 탄허는 기존의 전통 사상을 선택했다. 그가 말한 “도를 위해” 스승 한암(漢岩 1876~1951)을 찾아갔다는 것은 무슨 뜻일 까? 식민지라는 암울한 현실과 탄허가 택한 구도(求道)의 열정이 서로 맞부딪치면서, 필자는 많은 의문을 갖게 되었다. 도대체 그에게 도란 무엇이며, 그러한 구도의 자세를 어떻게 평가해 야 하는가? 당시 유교망국론(儒敎亡國論)이 대두하였던 시대상황 속에서 탄허 스님은 왜 오히 려 전통 사상 쪽으로 자신의 방향을 잡았던 것일까? 이때 탄허 스님의 말이 필자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바로 앞서 언급했던, “종지는 모르 고 기능에만 치우친 (근대) 학문”이라는 그의 사자후였다. 청년 탄허의 깊숙한 내면과 만나는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탄허스님의 유·도·불 전통 사상에 대한 순력(巡歷)은 식민지로 전락한 조 선에 대한 그의 고민, 현실문제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던 그의 여정이었음이 분명하다. 그 여정 끝에 스님이 주창(主唱)한 ‘삼교회통’은 청년 탄허에게 품었던 필자의 의문을 해결해가는 실마리였다. 이 글의 2장에서는 전통 계승의 길을 택하고, 스승 한암을 찾아간 청년 탄허를 추적하였다. 이를 통해 탄허 스님이 한국전쟁 이후 불교계를 혁신하는 교육자로 우뚝 설 수 있었 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탄허 스님의 교화활동은 사실 ‘인재양성’이라는 이 하나의 말로 집약될 수 있을 정도로, 그 는 후진을 길러내는 교육에 온정신을 쏟아 부었다. 그는 자신의 방대한 역경사업조차도 “모두 인재양성을 위한 이력본(履歷本)을 역주한 것이라며,” 승려 교육의 교재를 개발하려는 목적에 서 비롯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더욱이 1966년 ‘동국역경원’ 개원식에선, “법당 100채를 짓는 것보다 스님들 공부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아직도 회자(膾炙)되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간명하지만 그의 불교관과 교육관을 이해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좋은 승려를 길러 내는 것이 왜 그에게는 그토록 중요했던 것일까? 이 글의 3장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불교계에 불어 닥친 정화운동 속에서 탄허 스님이 행한 ‘오대산수도원’에서의 교육활동에 주목해보려고 한다. 오대산 및 영은사 수도원에서 탄허 스님은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강조했던 스승 한 암의 전통을 계승해, 교육을 ‘결사(結社)’의 차원으로 승화시켰다.4) 이를 통해 탄허 스님이 왜 그토록 교육에 몰두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탄허 스님의 학문 편력과도 무관치 않지만, 그는 늘 ‘삼교회통’을 주창하였다. 삼교회통은 최치원 이래 전통시대에 열린 지식인들이 도달했던 학문의 결론이었다. 탄허 스님이 말한 삼교 회통은 동양사상 속에 내재되어 있는 ‘자각(自覺)’이라는 본질을 통해, ‘의타(依他)’적인 그간의 서구 학문과 서구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함을 역설하신 것으로 주목된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부상하며 세계 문명의 축이 아시아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이른바 ‘아시아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제 서구의 이항대립적인 문명 패러다임을 극복하면 서, ‘포용과 상생’의 사고로 나아가야 할 때가 왔다. 이제 배제가 아니라 조화로운 포용과 우승 열패가 아니라 호혜의 상생에 기초한 동양의 사상적 전통이 새롭게 깨어날 때가 되었다. 이 글 의 맺음말에서는 탄허 스님의 삼교회통을 통해 ‘근대를 넘는’ 우리 교육의 새로운 목표를 고민 해보았다. 현재의 우리는 몸과 마음, 몸과 삶, 몸과 자연, 몸과 사회가 서로 모두 어긋나있다. 이 간극과 소외는 그간 ‘발전과 경쟁’ 만을 강조해온 근대 서구 중심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진정한 소통이다. 탄허 스님의 지혜를 불러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글은 필자의 능력 부족과 관련 자료의 불철저한 정리로 인해, 탄허 스님의 생애와 사상을 제대로 복원되지 못한 면이 없지 않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제현(諸賢)의 질정(叱正)을 받아 후일 보완 수정할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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