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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오대산사고의 守直僧徒 운영

  • 주제조선후기 오대산사고의 守直僧徒 운영
  • 시대조선후기
  • 저자姜文植
목차
위로 가기 조선후기 오대산사고의 守直僧徒 운영
姜文植
1. 머리말
2. 守直僧徒 운영 규정
3. 守直僧徒의 임무
4. 운영 과정의 문제점
5. 맺음말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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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庫는 고려·조선시대에 국가의 중요 서적들을 보존·관리하던 서고였다.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外史庫를 지방 중심지에서 깊은 산 속으로 옮겼다. 이는 전란 중에 충주·성주의 사고가 파괴되고 실록을 비롯한 서적들이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던 경험을 거울삼아 향후 이와 같은 피해가 재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취한 조치였다.

하지만 깊은 산 속이 서적을 보관하기에 적합한 환경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서적과 같은 紙類 문화재의 보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화재 예방과 防濕이라고 할 수 있다. 사고를 산으로 옮긴 것은 전란의 피해, 즉 화재로 인해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산 속 환경은 방습의 측면에서는 상당히 취약하였다. 이 점은 조선후기에도 이미 인지되었던 사실인데, 영조대에 적상산사고에 다녀왔던 사관 閔亨洙의 보고는 이를 잘 보여준다.

 사고가 있는 곳은 지형이 높고 산안개가 항상 끼어 갠 날이 없기 때문에 습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소장 책자들도 습기가 현저하니 마땅히 해마다 포쇄를 해야 합니다.

, 사고는 서적을 보관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화재 예방을 위해 온돌을 설치하지 않았으므로, 건물 자체에는 습기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처럼 산 속 환경은 방습의 측면에서 서적 보관에 매우 불리하였지만, 전란에 의한 국가 기록물의 소실을 경험한 조선 정부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 문제는 산 속에 설치된 외사고의 관리를 철저히 함으로써 습기로 인한 서적의 손상을 막는 것이었으며, 조선 정부의 외사고 운영도 바로 이점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조선후기의 외사고 관리는 두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소장 서적에 대한 관리로, 중앙에서 정기적으로 史官을 파견하여 서적을 曝曬하는 것과 冊櫃 안에 청궁·창포 가루등의 방습제를 넣어 습기를 제거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서적을 보관한 사고 건물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사고의 參奉守直僧徒, 수호군 등이 이 일을 담당하였다. 이들 중에서 관리 책임은 수령의 지휘를 받는 참봉에게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수직승도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외사고 수직승도들의 실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아직까지 부족한 상태이다. 필자 역시 이전에 오대산사고 운영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면서 사고 건물 및 서적 관리의 실상과 사고 참봉의 역할 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히 고찰했으나, 수직승도에 대해서는 간략한 언급에 그친 바 있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오대산사고의 사례를 중심으로 외사고 수직승도의 운영 규정과 담당 업무, 운영상에서 나타난 문제점 등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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