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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臺山 史庫本 실록의 특징과 학술적 가치

  • 주제五臺山 史庫本 실록의 특징과 학술적 가치
  • 시대2006년
  • 저자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목차
위로 가기 五臺山 史庫本 실록의 특징과 학술적 가치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머 리 말
1. 오대산 사고본 실록의 현황
2. 교정쇄본의 오대산 사고 보관 경위
3. 오대산 사고본 실록의 교정 사례
4. 오대산본 사고본 실록의 학술적 가치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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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7월 일본 동경대에 있던 오대산 사고본 실록 47책이 국내로 돌아왔다. 1913년 일본에 반출된 지 93년 만이었다. 조선초기부터 제작된 조선왕조실록(이하 실록)은 국가에서 특별히 설치한 史庫에 보관이 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관리상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고 산간 지역에 실록을 보관하는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조선후기에는 실록을 5부 간행하여 1부는 궁궐 안 춘추관에 보관을 하고, 나머지 네 부는 강화의 鼎足山, 봉화의 太白山, 무주의 赤裳山, 평창의 五臺山 4곳의 산간 지역에 실록을 보관하였다. 조선왕조는 사고에 보관된 실록에 대해 체계적인 관리를 하였다. 3년을 주기로 하여 史官을 파견하여 曝曬 작업을 지휘하게 하고, 실록을 보관하고 꺼낸 상황을 작성하여 實錄形止案을 남겼다. 조선왕조 내내 산간 지역 네 곳에 잘 보관된 실록은 1910년 조선이 일제에 병합된 후 수난을 당했다. 그 중에서도 오대산본 실록의 수난은 컸다. 반출에 유리한 지리적인 조건 때문에 1913년 일본으로 유출된 것이다. 일본으로 반출된 오대산 사고본 788책은 1923년 관동대지진의 여파 속에 대부분 소실되었고 74책만이 남아 있었다. 그 중 27책은 1932년에 돌아왔고, 2006년 다시 47책이 국내로 돌아옴으로써 실록 연구에 귀중한 전기가 마련되고 있다.2 014년 현재 현존하는 오대산 사고본 실록 74책은 성종실록9책과 중종실록50, 선조실록15책이다. 무엇보다 오대산 사고본 실록은 실록을 완간하기 직전의 교정쇄본이라는 점에서 학술적인 가치가 크다. 조선왕조실록제작의 구체적인 과정을 직접 보여주고 있는 실물 자료인 셈이다. 또한 정족산본, 태백산본 등 현존하는 실록과 서로 비교 연구하는 근거를 제시해 줄 수도 있다. 본 연구에서는 교정쇄본으로서 오대산 사고본 실록이 갖는 특징과 그 학술적인 가치에 대해 조명을 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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