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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五臺山의 정립에 있어서 文殊信仰과 華嚴
- 주제한국 오대산의 불교문화와 문수신
- 시대7C 중반에서 8C 중엽
- 저자중앙승가대 조교수 _ 자현(염중섭)
목차
위로 가기 新羅五臺山의 정립에 있어서 文殊信仰과 華嚴중앙승가대 조교수 _ 자현(염중섭)
Ⅰ. 序論
Ⅱ. 자장의 문수친견과 신라오대산 개창
1. 자장과 관련된 현존하는 문헌군과 문제점
2. 중국오대산 문수친견의 타당성
3. 자장의 溟州 行과 신라오대산의 시작
Ⅲ. 보천과 효명의 오대산 정립과 문수 및 화엄
1. 보천과 효명의 종교체험과 五臺五萬眞身信仰
2. 신라오대산 신앙의 특징으로서의 문수와 화엄
Ⅳ. 結論
상세소개
위로 가기신라오대산의 신앙구조는 중국오대산의 영향에 의해서 삼국시대 말 자장이 개창하고, 이후 통일신라의 보천과 효명에 의해 확립된다. 즉 7C 중반에서 8C 중엽에 걸친 약 100 여년의 기간을 거쳐 신라오대산의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신라오대산에는 중국오대산의 영향이 존재하지만, 중국오대산과는 다른 특수한 형태의 신앙구조가 확인되고 있어 주목된다. 중국오대산은 전체가 문수 중심에서 화엄이 보조적인 역할만을 하고 있다면, 신라오대산은 문수와 화엄의 이중구조적인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신라오대산에 대한 중국오대산의 영향이 종속적이지 않고 제한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본고는 이와 같은 신라오대산의 특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자장과 보천⋅효명의 내용에 대한 측면을 검토해 보고자 한 것이다. 먼저 자장과 관련해서, 현존하는 자장관련 자료는 크게 중국문헌과 국내문헌의 두 그룹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기록상에 출입이 존재하고 있어 명확한 판단에 어려움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이 문제를 정리하고, 자장의 중국오대산 문수친견과 신라오대산 개창의 당위성을 검토해 보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검토를 통해서, 자장의 중국오대산 문수친견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타당성이 더 크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또 이러한 과정에서 자장의 중국오대산 참배가 入唐한 직후의 사건이 아니라, 장안의 행적 뒤라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이외에도 중국오대산의 문수친견 장소는 太華池가 아닌 北臺라는 점 및 자장이 신라오대산을 참배하는 시기가 만년이라는 점을 국내문헌의 대비를 통해서 명확하게 정리해 보았다. 다음으로는 자장의 신라오대산 개창과 관련된 측면으로 넘어가, 그 시기는 귀국 직후가 아닌 만년이라는 점. 그리고 자장은 신라오대산의 개창자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문수친견에 실패하면서 신라오대산의 완전한 개창이 아닌 시원적인 역할만 하고 있을 뿐임을 분명히 했다. 이는 이후 신라오대산의 확립에 寶川과 孝明의 역할이 중요하게 된다는 점. 또 신라하대에 신라오대산이 발전하게 되면서, 자장이 개창자로서 보다 강력하게 요청받게 되는 이유로 작용한다. 신라오대산이 五萬眞身체계로 확립되는 것은 보천과 효명의 특수한 종교체험에서 기인한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이 부분을 『삼국유사』의 오대산 관련 기록들을 중심으로 해서, 민지의 『五臺山事蹟記』 속 「淨神太子孝明太子傳記」를 통해 보충⋅정리하였다. 그리고 보천이 제시하는 최종적인 오대산신앙구조의 특징에는 문수와 더불어 화엄이 전체를 일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중국오대산과 변별되는 신라오대산만의 특징인 동시에, 신라오대산이 대승불교의 다양한 불보살들을 융합하고 이와 더불어 대승경전과 밀교의 다라니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한 배경이 된다. 이런 점에서 신라오대산은 자장과 보천⋅효명에 의해서, 문수와 화엄의 이중구조를 통해 완성되는 신라적인 聖山이라고는 점을 판단해 볼 수가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