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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서부의 문수신앙과 서하오대산의 개창

  • 주제한국 오대산의 불교문화와 문수신앙
  • 시대8세기
  • 저자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 _ 계미향
목차
위로 가기 중국서부의 문수신앙과 서하오대산의 개창
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 _ 계미향
Ⅰ. 머리말
Ⅱ. 중국 서부의 오대산신앙
1. 토번과 위구르의 문수신앙
2. 五代의 돈황 제61굴
Ⅲ. 서하의 오대산 신앙
1. 서하 오대산 개창의 배경
2. 서하의 五台山 信仰
3. 신라 無漏와 하란산 백초곡
Ⅳ. 맺음말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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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서성 오대산 문수신앙은 당대에 시작되어 동아시아 전역에서 크게 성행하였다. 오대산은 『화엄경』, 「보살주처품」에 의거하여 문수보살의 주처지로 상정되며, 문수신앙은 신라와 일본, 토번과 위구르, 돈황과 서하국, 요에 까지 이식되었다. 논자는 그 가운데 중국 서북부에 위치한 토번과 위구르, 11세기에 건국된 서하국의 오대산신앙에 대해, 돈황 막고굴 제61굴 유적과 하란산 백초곡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당의 멸망 후 중국은 5호 16국으로 분열되었고, 그 후 한족이 세운 송은 당의 영토 전체를 차지하지는 못했기에, 서하, 요 등, 주변 제국과의 갈등과 긴장이 한 동안 계속 되었다. 그런 정치적 상황에서도 서하, 요 등의 불교도들은 송의 영역 내에 있는 산서성 오대산 문수보살 성지를 참배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열망은 현실적으로 이루기 불가능하였기에 그들은 자국 내에 문수보살의 주처지를 상정하고, 그곳을 참배, 순례하는 새로운 신앙 형태를 낳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미 신라시대에 자장율사에 의해 오대산 문수신앙이 이식되어 있었다. 반면 서하는 11세기에 건국되었기에 그들의 독자적인 문수신앙도 건국 시기와 궤를 같이 한다. 서하국의 건국 주체는 7세기 이후 강대한 군사력을 자랑했던 티베트 민족의 한 일파인 黨項族으로, 그들은 실크로드 중심 도시인 하란산 인근의 靈武에 서하국을 세웠다. 서하의 왕실이나 승려, 백성들은 산서성 오대산 순례를 중요한 신앙행위로 삼았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송에 의해 입국이 거절되었다. 이에 서하인들은 신라나 일본의 예를 거울삼아 자신들의 영토 내에 오대산을 상정하고 문수도량을 창건하였다. 그런데 서하인들이 오대산으로 상정한 하란산 백초곡은 신라승 무루가 8세기 중엽까지 머물렀던 수행지였다. 서하인들은 하란산뿐 아니라 그의 유해를 모신 下院의 宏佛塔도 보수, 확장하여 신앙의 중심지로 삼았다. 백초곡과 굉불탑은 지금도 서하의 대표적인 불교유적지로 꼽히며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제 막고굴 제61굴을 조성한 토번과, 거룡관 유적을 남긴 위구르, 서하인들의 오대산 문수신앙을 차례대로 살펴, 중국북서부 지역에서의 오대산 문수신앙의 전개 양상을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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