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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의 신라 오대산 개창과 의미

  • 주제한국 고 중세 오대산의 고승과 역사
  • 시대1206∼ 1289
  • 저자남무희 (국민대학교)
목차
위로 가기 자장의 신라 오대산 개창과 의미
남무희
(국민대학교)
1. 머리말
2. 입당구법 이전 자장의 주요 행적
3. 입당 구법 시기 관련 자료 재검토
4. 입당 이후 남오대와 북오대 순례 기록 검토
5. 귀국 이후 남오대와 북오대산 개창이 갖는 의미
6. 맺음말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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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576∼655)은 우리 나라 동북방 지역에 오대산을 개창해 ‘문수 화엄신앙’을 처음으로 정립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내용이 타당한지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전하고 있는 다양한 문헌자료에서 자장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우선 밝혀볼 필요가 있다. 자장을 가장 먼저 문헌자료에서 언급한 당나라의 도선은 자장을 호법보살로 높게 평가하였다. 이러한 관점을 수용한 도세는 “감응록(感應錄)”이라는 신이 영응의 관점에서 자장의 전기를 정리하였다. 한편 고려 후기의 일연(一然; 1206∼ 1289)은 삼국유사의 여러 기록에서 자장을 “정율(定律)”이라는 관점에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민지(閔漬; 1248~1326)는 자장의 중국 오대산 참배와 귀국 이후 신라 오대산 불교의 개창을 강조하고 있다. 이외에 ‘황룡사찰주본기’와 같은 금석문 자료 및 다양한 전설과 구술자료들도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위의 자료들을 살펴보면 중국측 기록에서는 자장이 중국의 오대산을 순례하였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에 반해 국내 자료인 일연의 삼국유사와 민지의 자장 관련 기록에서는 자장이 중국의 오대산을 순례하였으며, 신라로 귀국한 이후 신라 동북방 지역에 오대산을 개창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렇다면 자장은 언제 문수보살을 만난 것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자장이 문수보살을 만난 장소는 어디인가라는 문제도 아울러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자장과 신라 오대산 개창의 문제는 견해를 달리하는 다양한 입장의 논문들이 다수 발표되었다. 이러한 연구성과를 일일이 검토하기에 앞서 본고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밝혀보고자 한다. 우선 자장은 언제 문수보살을 만났는가라는 점을 검토하고자 한다. 다음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장은 언제 입당하였는가라는 문제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그런 다음 자장이 중국의 남오대와 북오대를 순례하는 기록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또한 자장이 낙양의 용문석굴을 참배하고 불상을 조성하였다는 기록과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적에 대한 부분도 함게 언급하고자 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귀국 이후 자장이 신라 국내에 남오대와 북오대산을 개창한 것이 갖는 의미를 밝혀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자장은 신라 국내에서 문수보살을 몇 번 만났을까라는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자장은 신라 국내에서 여러 번에 걸쳐 문수보살을 만났는데, 마지막에는 문수보살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은 자장이 신라 오대산 신앙을 문수보살 주처신앙으로 개창하였다는 사실과 어떤 함수관계를 갖고 있는 것인가라는 문제도 추론해 보고자 한다. 논문 서술에 문제가 있는 부분은 추후 보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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