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
고려 시대 제석신앙・제석도량과 불설제석소문경의 사상
- 주제한국불교에서의 제석천이 가지는 의미와 제석신앙
- 시대신라 시대
- 저자이병욱 (보조사상연구원 원장)
목차
위로 가기 고려 시대 제석신앙・제석도량과불설제석소문경의 사상
이병욱
(보조사상연구원 원장)
Ⅰ. 서론
Ⅱ. 고려시대 제석신앙의 다양한 형태
Ⅲ. 고려시대 제석도량와 제석재의 설행과 의미
Ⅳ. 『불설제석소문경』의 사상
Ⅴ. 결론
상세소개
위로 가기제석천(帝釋天, 제석, 제석천주)은 인도 브라만교의 인드라(Indra)가 불교에 유입된 것이고, 제석천은 불교를 보호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브라만교의 중심자료 『리그베다』에서 인드라는 가장 중시되는 존재였다. 『리그베다』에서는 인드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양처럼 무궁한 인드라는 전사 중의 전사요, 힘을 다스리는 만물의 지배자니, 노래 불러 그를 찬양하여왔노라.” “나는 최고의 영웅 인드라를 찬양하리니, 그는 자기 힘으로 하늘과 땅을 갈랐고 인간의 옹호자로서 모두에게 충분한 너비를 주었으니, 그의 위대함은 강과 대양을 능가하도다.” 인드라는 폭풍우, 번개, 비 등의 자연현상과 관련된 존재이다. 인드라는 전쟁과 비의 ’신‘이고, 소마(Soma)주를 즐겨 마시는 존재이다. 또 인드라는 악마 브리트라(Vŗtra)를 물리치는 존재이다. 『리그베다』에서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술에 취한 사이비 무사처럼 실로 브리트라는 힘차게 위압하며 소마를 말끔히 마셔버리는 호탕한 용사에게 도전하나, 인드라가 지닌 무기의 충격에 그는 감당하지 못하니, 인드라를 적으로 삼는 자는 얼굴이 찢기어 분쇄되었도다.” 그런데 인드라가 악마 ’브리트라‘를 무찌른 것은 아리아인의 인도정복과 관련된다고 해석된다. 여기서 인드라는 정복자 아리아인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와 적대관계에 있는 ’브리트라‘는 정복당한 인도의 토착민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도의 간다라 불교미술 속에서 불교 속에 들어온 제석천의 모습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간다라 불교미술 가운데 시비왕 본생(1-2세기 제작), 석가모니의 탄생(2-3세기 제작), 아기 부처님의 관욕(灌浴)(1-2세기 제작), 석가모니에게 설법을 청하는 제석천(1세기 경), 도리천에서 내려오는 석가모니(3-4세기 제작), 제석굴의 선정(1-2세기 제작) 등에서 제석천이 등장한다. 이러한 제석(제석천)신앙이 신라에 들어온 구체적 단서는 진평왕대에 천주사(天柱寺)라고 불리던 내제석궁(內帝釋宮)에서 찾을 수 있다. 진평왕은 제석천 신앙을 수용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석신앙을 지배이데올로기로도 활용하였다. 진평왕은 제석천의 호위를 받는 부처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부각하고자 한 것이다. 한편, 인도불교에서의 제석천 위상과 초기 한국불교(신라)에서의 제석천의 위상이 다르다는 지적이 있다. 인도불교에서는 브라만교의 범천(梵天)과 제석천 가운데 범천이 주류가 되었는 데 비해서, 초기 한국불교에서는 제석천이 우위에 있었고, 이는 토착신앙의 포섭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고려시대의 제석신앙의 다양한 형태(2장), 제석도량과 제석재의 설행과 의미(3장), 그리고 제석에 관한 경전, 곧 『불설제석소문경』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4장). 고려시대의 제석신앙의 다양한 형태와 제석도량과 제석재의 설행에 대해서는 선행연구, 곧 서윤길 , 안지원 등의 연구에서 대략의 내용을 밝혀놓았는데, 이 글에서는 이러한 선행연구의 내용을 수용하고, 그 해당 자료를 좀 더 자세히 검토하고, 초점을 명확히 하며, 덧붙여 제석도량과 제석재 설행의 의미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나아가, 선행연구에서 『불설제석소문경』에 대해 간단히 이름만을 언급한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가서 그 사상적 내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