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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제석신앙과 ‘제석천룡탱’의 출현
- 주제한국불교에서의 제석천이 가지는 의미와 제석신앙
- 시대18세기
- 저자김현중(玄周) (전남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목차
위로 가기 조선후기 제석신앙과 ‘제석천룡탱’의 출현김현중(玄周)
(전남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학술연구교수)
Ⅰ. 머리말
Ⅱ. 조선후기 제석신앙의 두 가지 흐름
1. 「제석청(帝釋請)」을 통해 본 조선후기 제석신앙
2. 무속신으로서의 제석천
Ⅲ. 18세기 신중신앙의 정비
1. 104위 신중신앙 성립
2. 「제석마지절차(帝釋摩指節次)」와 ‘제석천룡탱’의 출현
Ⅴ. 맺음말
상세소개
위로 가기제석천은 고대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으로 리그베다나 마하바라따에서는 악신(惡神)인 아수라와 갈등하는 선신(善神)으로 묘사되며, 전쟁신 또는 신들의 왕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제석천은 불교에도 수용되어 불전(佛傳)에서 붓다의 탄생이나 열반 등 다양한 장면에서 범천과 함께 주요 호법신으로 나타나고, 디가니까야에 수록된 「제석문경」과 같이 불경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까지 한다. 대승불교에서도 제석천은 가장 중요한 호법신으로 여겨지는데 대승불교의 신중신앙에 큰 영향을 미친 금광명경에서 제석천은 20제천(諸天)의 하나로 구성된다. 한국의 제석신앙은 불교의 전래와 함께 시작하였으며, 한국 고유의 천신신앙과 결합하여 제석천은 무속신앙에서 새로운 신격으로 탄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불교에서도 제석신앙은 왕의 장수 기원과 국난 극복을 위해 이루어졌으며, 신중신앙 가운데 특별한 지위를 누렸다. 조선후기의 제석신앙은 조각이나 불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었는데 불화의 경우 제석천이 주존으로 그려지는 제석천도가 제작되어 불전에 봉안되기도 했고, 조선후기 제작된 600여점의 신중도에서 제석천은 하늘 세계 부분의 주존으로 등장해 제석신앙이 조선후기에도 매우 성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18세기 무렵부터 위태천, 팔부중, 염마라왕 등으로 화면을 구성한 ‘천룡탱’이라는 그림들이 그려지게 된다. 이 ‘천룡탱’은 곧 제석천도와 결합하여 ‘제석천룡탱’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림으로 성립하게 되는데 이는 조선후기 신중신앙의 흐름에서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제석천도를 다룬 선행연구에서는 아쉽게도 ‘제석천룡탱’의 출현에 대해 주목하고, 심도 깊게 논의하지 못했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신중의례의 분석을 통해 조선후기 제석신앙의 전개를 살펴보고, 새로운 신중의례를 토대로 등장한 ‘제석천룡탱’의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