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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中臺 寂滅寶宮 건축에 대한 연구

  • 주제오대산 中臺 寂滅寶宮 건축에 대한 연구
  • 시대현대시대
  • 저자이 강 근 (경주대학교 문화재학부 교수)
목차
위로 가기 오대산 中臺 寂滅寶宮 건축에 대한 연구
이 강 근 (경주대학교 문화재학부 교수)
Ⅰ. 머리말
Ⅱ. 眞身舍利 신앙과 건축
Ⅲ. 중대 적멸보궁의 창건
Ⅳ 창건 이후의 補寺 활동
Ⅴ. 중대 적멸보궁의 改建
Ⅵ. 중대 적멸보궁 건물의 특징
1. 創建 적멸보궁(속건물)의 특징
2. 改建 적멸보궁(겉건물)의 특징
Ⅶ. 중대 적멸보궁의 건축사적 의의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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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臺山 中臺의 地爐峰에 자리잡은 寂滅寶宮은 신라시대 이래 眞身舍利 保藏處라는 점에서 불교계의 관심과 주목을 받아 왔다. 그러나 진신사리가 묻혀있을 법한 언덕과 적멸보궁 건물의 관계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였 다. 더구나 적멸보궁에 대한 문헌자료의 종합적인 정리와 건물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거의 행해지지 않은 결과 건축사적 중요성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필자는 1999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건물을 조사하고 관련 기록을 검토한 결과를「상원사 적멸보궁에 대한 조사보고서」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바 있다. 그 때 이미 적멸보궁 건물의 중요성과 건축사적 의의를 간략히 밝히고 문화재 지정의 필요성을 언급하였으며, 中臺香閣에 걸려 있는 현판기문을 비롯하여 상원사 관련 문헌사료를 검토하여 적멸보궁의 개략적인 연혁을 정리하였다.

이 글에서는 위 보고서의 내용을 토대로 하되, 먼저 진신사리 신앙과 건축의 관계를 검토한 뒤, 오대산 중대에 적멸보궁이 창건된 배경을 세조대 사리신앙 속에서 살펴볼 것이다. 世祖代에 창건된 건물은 다행스럽게도 현존 적멸보궁의 속건물로 남아 있으며, 공포, 기둥, 창방뺄목, 천정 반자의 단청 등에서 조선초기 양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현재의 겉건물이 防風·防寒用으로 증축되면서 속건물에 변형이 가해진 부분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현존 건물의 배면에도 칸마다 벼락닫이창이 창방과 중방 사이에 설치되어 있기는 하나, 속건물의 배면은 벽으로 막혀 있어서 건물 내부에서 拜觀者가 사리보장처를 내다보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여기서 더 근본적인 문제는 창건 건물의 성격이다. 즉, 통도사(1645), 용연사(17세기말 18세기초), 법흥사(20세기), 정암사의 적멸보궁이 현재 사리보장처의 拜殿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대 적멸보궁 또한 지금처럼 배전으로 사용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조선전기의 흥천사 사리전처럼 사리봉안처로 창건되었던 것일까 하는 문제이다.

새로 발견된 속건물이 조선초기의 유구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해서, 19세기 말에 증축된 부분 즉 겉건물의 가치가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방한용 외벽을 두르고 지붕을 확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부의 장엄까지 개조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증축과 함께 개조된 부분을 동시대의 佛殿과 비교하여 그 의의를 밝히면 서, 고종대에 행해진 佛事에 대해서도 언급할 것이다. 끝으로 말해 둘 것은 필자의 조사 이후인 2000년 가을에 적멸보궁 건물에 대한 작지 않은 수리가 사행되어 19세기 겉건물의 모습마저 크게 변형되고 말았다는 사실이 다. 문화재 보존을 위한 지정을 서두르지 않은 탓에 일어난 일이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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