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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國寺無垢淨光塔重修記의 초보적 검토
- 주제解讀을 중심으로
- 시대1996년
- 저자安 承 俊
상세소개
위로 가기석가탑은 공식 명칭이 佛國寺三層石塔이며 현재 국보 제 21호로 지정되어있다. 속칭 석가탑으로 불리는 이 탑은 1966년 9월에 도굴꾼 에 의해 탑의 일부가 훼손되었고, 바로 이어 문화재관리국에 의해 해 체 수리를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리함 등 일체의 유물과 함께 발굴된 것이 이른 바 ‘墨書紙片’으로 명명된 종이 뭉치였다. 이들 紙 類 가운데 하나가 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었다.그러나 묵서지편은 유물 가운데 ‘기타’로 분류되어 발굴 당시부터 주목받지 못하였다. 2005년 연합뉴스에 의해, 묵서지편 가운데 고려 초 석가탑 중수기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보도되었다. 이어 2007년 3월 9일에는 조선일보 보도에 의해 중수기 내용 일부가 공개되었으 며, 2007년 3월 24일 유물 보관처인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으로 약칭)에서는 墨書紙片의 내역을 다음과 같이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보도 자료에 따르면 墨書紙片은 110여 쪽에 달하며, 1) 寶篋印陁羅尼 經, 2) 1024년 佛國寺 無垢淨光塔 重修記, 3)1038년 佛國寺 西石塔 重 修 形止記, 4) 布施名公衆僧小名記의 최소 4종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와 함께 공개된 된 것이 중수기 원본 사진 3장이었다. 보협인다라니경은 造塔 경전이며, 중수기를 비롯한 나머지 3점은 古文書로서 작성 시기가 비슷한 일괄문서이다. 중수형지기는 그 내용 이 공개되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으나 14년의 시차만 있을 뿐 중수 기와 그 비슷한 것으로 보이며, 布施名公衆僧小名記는 중수 당시에 보시한 사람과 보시 물품(화폐)을 기록한 문서로 보인다. 공개된 重修記는 고문서학, 어문학적 측면에서도 그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記’의 내용과 그 문장 격식이 거의 완벽하게 구현되고 있 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때의 記文은 단순히 어떠한 사실이나 전말을 기록한다는 의미 이 외에도 歷史와 物名과 人名, 日誌, 置簿的 성격 이 종합된 ‘기록물’이라는 뜻이다. 요컨대 본 중수기는 역대 혹은 당 대까지의 사실을 기록하고 그것을 정리해 두었다는 점에서 기록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따라서 국어사 혹은 역사연구 등 사료적 가치면에 있어서 1031년에 작성된 칠곡의 <淨兜寺造塔形止記>와 더불어 고려전기를 시대를 대표하는 고문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3)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배포한 보도 자료를 통해보면 본 중수기는 전 체가 15개 부분으로 구분되어있는 듯하다. 이를 내용적인 면에서 검 토해보면 크게, 1) 탑의 來歷 부분, 2) 사리함과 무구정광경 등을 안장 한 부분, 3) 중수 때의 공양 품목, 담당자, 보시자, 일지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본고는 원본의 전문과 위에서 열거한 관련 문서를 모두 검 토하지 못하였다. 추후 원본 및 이른 바 ‘묵서지편’의 내용이 공개된 뒤 재 검토할 것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