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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역 新羅 ‘北進期城郭’에 관한 일고찰
- 주제경기지역 新羅 ‘北進期城郭’에 관한 일고찰
- 시대7세기 초
- 저자權 純 珍
목차
위로 가기 경기지역 新羅 ‘北進期城郭’에 관한일고찰
權 純 珍
Ⅰ. 머리말
Ⅱ. 경기지역 신라 북진기성곽 현황
Ⅲ. 북진기성곽의 특징
Ⅳ. 북진기 신라성곽의 성격
Ⅴ. 맺음말
상세소개
위로 가기城郭은 한 나라의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방어 하기 위해 축조하게 된다. 또한 성곽의 축조에는 장기간의 노동력이 투입되어야하고 이에 따르는 경제적 희생이 요구되기 때문에 주도면밀한 국가적 계획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런 이유로 성곽은 축성시기와 축성주체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京畿地域은 삼국이 일정기간 동안 국가 간의 영역쟁탈전이 극 심하던 곳으로 그에 상응하는 고대 성곽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新羅城郭도 상당수 확인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경기지역 신라성곽의 특징으로 첫째, 대부분 산성 이며, 둘째, 석축성이 주류이고, 셋째, 일정한 규모의 성들이 방사성으 로 분포하며, 넷째, 축성방법상에 懸門과 補築이 나타나고, 다섯째, 인접지역에 고분군이 수반되며, 여섯째, 기와가 집중적으로 출토된다 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특징들은 신라가 이 지역을 장악하 고 통일을 이룩한 후 멸망할 때까지 사용된 성곽을 총칭하여 신라성곽으로 분류한 제한점이 있다. 경주지역의 소국에서 출발한 신라는 한강유역을 점유하면서 한반 도의 강자로 떠오르게 된다. 이에 따라 복속지에 대한 성곽의 축조는 당연한 결과물일 것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유하 고 함경도 일대까지 진출한 후 다시 임진강유역을 경계로 고구려와 대치하던 그 당시 경기지역은 삼국 간의 긴장과 대립의 지역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때 복속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役夫관리를 통해 대규모의 성곽축조가 가능하였을 것이라는 점에 의문이 간다. 이는 곧 신 라의 영역확장기에 사용되어졌을 가능성이 있는 성곽이 존재한다는 추정과 함께 신라 북진기성곽과 그 이후의 통일기성곽은 구분되어져 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경기지역에 분포하는 신라성곽 가운데 성곽의 입지와 규모 및 구조를 통해 볼 때 비교적 소형의 성곽들이 확 인되는데 이러한 성들은 영역 확립기에 사용되어진 것이 아니라 신라 의 영역확장 과정에서 짧은 기간 동안 사용되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본고에서는 신라 北進期에6) 축조되어진 것으로 판단되는 성곽 을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먼저 분석대상 유적은 북진기성곽의 특 성을 파악하기 위해 이 지역에서 조사된 유적 가운데 신라유물, 특히 기와가 출토되지 않은 유적을 중심으로 하였다. 이후 앞서 살펴본 개 별유적을 통해 그 분포와 監視圈, 유형, 입지와 규모, 축조재료와 기 법, 부대시설과 출토유물을 통해 신라 북진기성곽의 제 특징을 추출해 보고자 한다. 또한 문헌자료와 기존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신라 북진 기성곽의 성격에 대해 검토할 것이다. 이를 통해 경기지역에서 신라 북진기 영역확장 과정에 대한 이해와 함께 북진기성곽의 典型을 제공 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는 타지역에서의 신라의 영역확장 과장에서 나타나는 성곽의 특징에 대한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