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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末麗初 知識人의 正體性
- 주제—崔彦撝를 중심으로—
- 시대신라시대
- 저자金 大 植
상세소개
위로 가기나말여초는 한국사에서 분열과 재통일이 이루어진 것 이외에도 骨 品制社會가 붕괴하고 三省六部制로 대표되는 중앙정치 기구로 대표 되는 새로운 사회체제가 형성되어 이후 한국중세사회의 전형이 이루 어진 시기이다. 변화의 추동력은 신라말 渡唐留學生으로 대표되는 새 로운 지식인집단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질서는 지배 세력의 교체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사회적 생산력 의 발전이 전제되고, 사회 각 부분의 변화와 발전 그리고 이러한 변화 를 추동하는 주도세력의 형성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물이다. 나말여초 지식인집단에 대한 연구는 오래 전부터 주목을 받아왔던 분야로 여러 성과들이 축적되어 있다. 연구는 崔致遠을 중심으로 도당유학생, 구체적으로 賓貢科에 합격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심층적으 로 진행되었다. 최치원 관련 연구의 진척은 특이한 행적과 아울러 관 련 사료가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른 인물들의 경우 관련 자료가 거의 없어 고찰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하지만 崔彦撝의 경우 그가 撰述한 13편에 달하는 碑文이 현존하고 행적을 추적할 단 편적 자료가 그나마 남아있다. 이로 인해 연구는 상당부분 진척되어 있지만, 보다 엄밀한 분석과 새로운 접근을 통해 구명하여야 할 여지 가 많다. 이 글은 나말여초의 변혁을 이끌었던 ‘一代三崔’로 대표되는 820년 무렵에서 907년 唐帝國의 멸망 때까지 신라에서 당의 國學에 유학하 고 빈공과에 합격한 도당유학생을 지식인집단으로 상정하였다. 이를 대표하는 崔致遠․崔承祐․崔彦撝의 행적을 통해 그들의 정체성 (Identity)이 어떠한 형태로 표현되었는가를 검토하는데 추적해 보고자 한다. 이번 검토는 고려로 귀부한 최언위로 대표되는 지식인집단이 후삼국통일 이후 고려정부에 참여하여 구축한 체제정비에서 그들의 정체성이 어떻게 발현되었는가를 구명하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