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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나옹문도의 오대산 중흥불사

  • 주제여말선초 나옹문도의 오대산 중흥불사
  • 시대신라시대
  • 저자황 인 규
목차
위로 가기 여말선초 나옹문도의 오대산 중흥불사
황 인 규
1. 머리말
ll. 고려후기 오대산의 고승과 사적
1. 고려후기 사적 편찬과 대장경 봉안
2. 고려말 나옹과 문도들의 불사
1ll. 조선초기 나옹문도들의 중홍불사
l. 조선초 나옹문도들의 불사
2. 세조의 삼화상과 왕실의 상원사 중창불사
N. 맺음말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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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은 그 웅장하고 깊으며 높고 큰 것이 풍악과 더불어 서로 갑을이 되는 산으로. 특히 문수보살의 주처인 오대산은 법기 보살의 주처인 금강산과 자웅을 이루었다 자장은 636년(선덕여왕 3) 당나라 오대산(청량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귀국후 중국의 오대산과 흡사한 명주 오대산 다섯 곳을 통대 만월산, 서대 장령산, 남대 기린산, 북대 상왕산, 중대 풍로산이 라고 칭하였다.

각 대에 암자를 두어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 록암, 그리고 중대 사자암이라고 하였다. 705년 ( 성덕왕 4)

신라의 왕자인 보천과 효명형제가 오대산에서 상원사의 전신인 륨如院을 짓고, 문수보살을 공양한 이후 五臺의 기틀이 이루어 졌다. 관음암은 관세음보살, 수정암은 대세지보살, 지장암은 지장보 살, 미록암은 오백나한, 사자암은 문수보살을 모신다, 그 후 오대 산은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4보살과 500나한을 모신 오대신앙으로, 7-8세기에 이르러 五類聖聚의 오만보살신앙으로 발전되며 , 경덕 왕대에 살았던 信孝居土 에 의해 계승되었다 고려말 대문인 이색은 “ 오대산은 천하의 명산이요, 상원사는 큰사찰" 이라고 하거나 조선초 문인들도 ‘ 천년의 승지라 보배로운 곳(寶地千年勝) ’ 또는 ‘문수가 머 무른 곳은 온 천하가 다 안다(文 珠住處天下知)’고 했다. 우리 동방의 부처 를 배우는 무리들 역시 대부분 서로 이끌고서 오대산으로 가는 것이 중국의 승려들이 오대산으로 가는 것과 차이가 없다고 했다  조선초에도 ‘세상에서는 五臺 山이라고 부른다 봉우리의 가운데 것은 地施, 동쪽은 滿月, 남쪽은 觀嚴, 서쪽은 長領이라 하며, 북쪽은 象王 이라 한다, 드디어 五類聖聚이 항상 머문다는 말이 있어서 불가에서 성대히 칭송한 다’고 하였다. 특히 ‘ 千 倚은 五臺 山 上|徒좋 곁에 있는데, 바로 한강의 상류로서 우리나라 제일 천이라 한다’ 고 하여 조선 건국후 한강의 발원이 되는 우통수가 있는 월정사. 와 상원사를 비롯하여 오대산사가 주목되었을 것이다.

이에 본고는 나옹과 문도들이 등장하여 여말선초에 이르기까지 오대산사의 활동을, 그리고 나옹의 선풍을 이은 세조에 의해 삽화상 이라고 불렀던 신 미와 두 제자 학열과 학조 등이 등장하여 조선초 오대산 신앙이 중홍하였던 사실에 천착하고자 하였다. 이는 조선초 숭유억불시책이 강화되는 가운데 지방의 산중불교가 홍성 하였던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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