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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敎 聖地의 誕生과 巡禮

  • 주제唐代 五臺山 巡禮를 중심으로
  • 시대삼국시대
  • 저자김 상 범(한국외대)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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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代 五臺山 巡禮를 중심으로
김 상 범(한국외대)
Ⅰ. 머리말
Ⅱ. 文殊聖地의 탄생과 국가권력
Ⅲ. 武則天의 文殊聖地 개입과 後援
Ⅳ. 代宗과 不空-五臺山 文殊信仰의 전국화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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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조는 즉위 후 다양한 종교통제정책을 발표하는데, 洪武24년(1391)에는 불교를 겨냥 하여 “승려들이 민간인과 섞여 거처할 수 없다” 는 詔書를 내렸다. 3년 후에는 다시 “佛 陀께서 세상을 뜨신 후 많은 祖師들이 부처의 뜻을 이어받아 고요한 곳에 머무르며 문밖으로 나서질 않았다”  며 승려들의 行禁을 강조했다. 僧禁政策은 향후 여러 사회적 요인과 맞물리면서, 산사에서 용맹 정진하는 수도승 像을 중국 승려의 이상적 이미지로 고정시켰다. 사실 불교는 禪定과 함께 遊行(行脚) 을 중시하는 종교이다. 인도는 우기가 있어서 하절기에는 安居하게 되는데, 이때 주로 禪定훈련을 하면서 인간세상을 遊行할 에너지를 축적하고, 안거가 끝나면 다시 유행에 나선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安居와 遊行 은 승려집단 생활주기의 양축인 것이다. 석가도 제자들을 모아놓고 수행을 통해 발견한 진리를 ‘遊行’을 통해 중생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며, 중생교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阿含經 에서도 ‘人間遊行’을 출가인이 세속과 관계를 맺는 생활방식이라고 언급하 였다. 이러한 승려들의 생활전통은 역경승들의 번역을 통해 중국에 그대로 전파되었다. 이 점을 감안하여 승려생활의 일부분이자 불교가 ‘宣敎型 宗敎’로 교세를 넓힌 공헌을 참작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遊行’의 전통을 재조명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遊行은 현대적 용어로는 ‘신앙인들의 종교여행’ 쯤으로 표현할 수 있을 텐데, 여행목적에 따라 좀 더 세분하면 포교와 교화를 목적으로 삼는 ‘遊化’와 교리학습과 영성체험을 주요한 목적으로 삼는 ‘遊學’으로 나눌 수 있다. 한대이래로 적지 않은 인도승과 서역승 들이 포교를 위해 중국을 방문한 것이 ‘遊化’라면, 巡禮와 求法적 특징을 가진 동아시아 승들의 인도행은 ‘遊學’이라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대 중반기를 지나면서 여러 요인으로 인해, 인도승의 포교여행이나 중국승의 구법‧순례여행 모두 현저히 감소한다. 승려의 삶의 일부라는 ‘遊行’을 통해 연결되던 인도-중국 간의 불교교류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다양한 영역에서 불교의 현지화‧토착화가 진행되는데, 그 일환 으로 함께 주목되는 것이 역내에 새로운 佛敎聖地가 탄생한다는 점이다. 이제 당으로 불교유학을 오거나 새롭게 탄생한 중국내 성지를 찾는 구법승과 신도가 증가하는 새로운 변화가 나타난다. 오대산은 바로 이 시기에 역내에 형성된 불교성지 가운데 하나이다.

이 글은 중국내 불교성지의 탄생에 중국적인 사회문화의 토양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살펴보고, 성지순례가 어떤 새로운 사회적 변화를 파생시켰는지 그리고 중세사회에 있어서 성지순례는 어떠한 사회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목적에 접근하기 위해서, 먼저 국가권력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역내 불교성지의 탄생과 전개과정을 검토한 뒤, 오대산 성지의 운영과 순례자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당대 오대산 순례의 사회적 의미를 고찰해보고, 마지막으로 ‘五臺山化現圖’와 ‘俗講’등을 통해 문수영험고사의 생산과 유포과정에 나타나는 특징과 의의에 대해 규명해보고자 한다. 다만 금번에는 여러 사정으로 인해 논문의 주제를 우선 “역내 오대산성지의 탄생과 전개-국가 권력과의 관계를 중심으로”부분에 한정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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