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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代 五臺山 文殊聖地와 국가권력
- 주제唐代 五臺山 文殊聖地와 국가권력
- 시대현대시대
- 저자金 相 範 (한국외대)
목차
위로 가기 唐代 五臺山 文殊聖地와 국가권력金 相 範 (한국외대)
Ⅰ. 머리말
Ⅱ. 文殊聖地의 탄생과 국가 권력의 개입
Ⅲ. 武則天의 五臺山 文殊聖 地 後援
Ⅳ. 代宗과 不空-五臺山 文殊 信仰의 전국화
Ⅴ. 맺음말
상세소개
위로 가기역대 중화제국은 皇權 至上主義的 관념아래 종교와 신앙에 대하여 일정한 통제권을 행사해왔다. 불교에 대해서도 시기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양한 통제정책이 시행되었는데, 승려의 활동범위를 제한하는 조치까지 구체화 된다. 특히 승려와 민간인의 혼거를 불허하고 속세와 격리된 수련을 강권하는 詔令 까지 연이어 발표되면서, 山寺에서 용맹 정진하는 수도승 像이 중국 승려의 이상적 이미지로 자리 잡게 된다. 승려에 대한 국가의 行禁조치가 결국 사회적 통념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불교는 禪定과 함께 遊行 을 중시하는 종교이다. 인도는 雨期가있어서 하절기에는 安居하게 되는데, 이때 주로 禪定훈련을 하면서 인간세 상을 遊行할 에너지를 축적하고 안거가 끝나면 다시 유행에 나선다. 안거와 유행은 승려집단의 생활주기에 있어서 두 축 이었던 것이다. 석가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마음수련을 통해 발견한 진리는 ‘유행’을 통해서 중생들 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며, 중생교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阿含經에서는 ‘人間遊行’을 출가인이 세속과 관계를 맺는 생활방식이라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승려들의 생활전통은 중국을 방문한 포교승의 활동과 역경작 업을 통해서 중국에 그대로 전파된다. 유행은 승려생활의 일부분이자, 불교가 ‘宣敎型 宗敎’로 교세를 넓힐 수 있었던 要因 가운데 하나로 작용하 였다. 사실 토지와 인민의 결착을 통해 사회의 안정을 강구했던 시대적 특징을 감안할 때, 중국불교의 황금기로 일컬어지는 唐代에 있어서 聖地巡 禮를 포함하는 ‘유행’의 실현은 주목할 만한 사회적 의의를 갖는다고 할수 있다.
유행은 현대어로 ‘불자들의 신앙여행’ 쯤으로 정의할 수 있을 텐데, 포교와 교화를 목적으로 삼는 ‘遊化’와 교리학습과 영성체험을 중시하는 ‘遊學’으로 세분할 수 있다. 한대이래 인도승과 서역승이 포교를 위해서 중국을 방문한 것이 ‘遊化’라면, 巡禮와 求法을 위한 동아시아 승려들의 인도 행은 ‘遊學’이라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대 중반기를 지나면서 인도승의 포교여행이나 중국승의 구법‧순례여행 모두 뚜렷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3세기부터 11세기까지 인도를 방문했던 동아시아의 순례자 가운데 문헌상으로 확인이 가능한 인원은 860명 정도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3세기에 24명, 4세기에 15명, 5세기에 117명으로 증가하다가, 7세기에 이르면 124명으로 최고조에 달하고, 8세기에는 84명, 9세기에는 2명으로 급감한다. 전통적으로 승려의 삶의 일부를 차지했던 ‘遊行’을 통해 연결 되던 인도-중국 간의 불교 교류가 8, 9세기 이후 현저하게 감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다양한 영역에서 불교의 현지화‧토착화가 진행되는데, 그 일환으로 함께 주목되는 것이 중국 역내에도 새로운 佛敎聖地가 탄생한다는 점이다. 이제 동아시아 각지에서 불교를 배우려는 구법승들이 唐 으로 몰려들었고, 새롭게 탄생한 중국내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도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오대산은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역내에 새롭게 조성된 불교 성지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까지도 가장 각광받는 성지인 만큼 관련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오대산 문수성지의 형성과 전개에 대한 개괄적인 연구 로부터, 行記를 위시한 자료에 관한 연구 , 교통노선ㆍ순례자숙소와여행허가에 대한 연구 , 돈황 五臺山圖에 관한 연구 등 다양한 주제로 연구가 전개되고 있다. 이 글은 역내 불교성지의 탄생에 있어서 중국적인 사회문화의 토양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검토해 보기 위해서 작성되었다.
‘국가권력과 신앙의 관계’를 살펴보는 지속적인 작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는데, 오대산 문수신앙이 급속한 성장세를 보여주는 ‘武則天’과 ‘代宗’시기를 중심으로, 聖地의 형성에 국가권력이 어떻게 개입하고 기능했는지, 그 특징과 의의는 무엇인지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