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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 華嚴의 初祖考 - 慈藏浩師의 華嚴思想
- 주제韓國 華嚴의 初祖考 - 慈藏浩師의 華嚴思想
- 시대현대시대
- 저자이행구(도업)
목차
위로 가기 韓國 華嚴의 初祖考 - 慈藏浩師의 華嚴思想이행구(도업)
Ⅰ. 序論
문제의 제기
1. 자장은 율사인가 화엄법사인가.
2. 한국화엄의 初祖는 慈藏인가 義湘인가
3. 慈藏系 화엄사상과 義湘系 화엄사상의 차이는 무엇인가
Ⅱ. 慈藏法師의 生涯 - 慈藏傳의 재검토
1. 出家 이전기의 생애
2. 入唐 修行期의 生涯를 요약하면
3. 귀국 후 傳法 活動期의 생애
4. 은둔기의 생애
Ⅲ . 慈藏의 華嚴思想
1. 慈藏과 五台山의 文殊信仰
2. 慈藏과 四句의 梵偈
3. 慈藏의 華嚴經 講說
4. 慈藏과 通度寺의 伽藍 배치
Ⅳ. 韓國華嚴의 二大 系派
1. 五台山系 慈藏華嚴
2. 終南山系의 義湘華嚴
Ⅴ. 結論
상세소개
위로 가기韓國佛敎에 있어 華嚴思想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敎學上에 있어서는 물론 信仰儀禮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지대하다. 新羅時代에는 元曉(618~686) 義湘(625~702)을 위시해서 審祥(? ~742)등이 크게 활약했고, 高麗時代에는 均如(923~973)가 나와 華嚴關係의 저술을 많이 남겼다. 朝鮮王朝시대에는 排佛崇儒政策의 어려운 상황 아래서도 金時習(1435~1493)은 『華嚴一·乘法界圖』(이하『法界圖』라 略稱함)에 대한 주석서를 남겼고 道峰有聞(1725~1800頃)은 『法界圖』에 대한 科註를 쓰기도 했음은 周熱의 사실이다.
지금까지 우리 학계의 연구 동향을 살펴보면 新羅華嚴의 系譜 또는 新羅華嚴의 主流 혹은 어느 특정한 華嚴家의 思想을 규명하려는 노력에 그쳤을 뿐 韓國華嚴의 初祖에 關한 연구는 과문의 탓인지 한번도 시도된 바가 없는 듯하다. 처음부터 義湘을 신라 화엄의 初祖 및 主流로 기정 사실화해서, 한국 華嚴의 初祖에 관한 문제는 문제 밖으로 방치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元曉나 義湘 이전에 圓光이나 慈藏등이 있었고, 이중에서도 慈藏은 華嚴과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人物이다. 지금까지 慈藏은 우리에게 律師로서만 크게 부각되어 왔다. 그러나 그를 持戒者로만 평가하는 것은 그의 眞面目을 바르게 보지 못찬 데서 생긴 잘못이다. 持戒者로서보다 文殊信仰者로, 華嚴思想家로 평가함이 옳다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첫째 중국의 五台山에서 文殊의 감화를 받고 돌아와 新羅 佛敎의 틀을 짰다는 점, 둘째 文殊에게 7일간 기도한 후 神僧으로 부터 傳受해 받은 四句의 梵偈가 바로「華嚴經」의 「須彌頂上偈讚品」에 나오는 偈頌이었다는 점, 셋째 중국에서 돌아온 후 자기가 살던 집 元寧寺를 중수한 후 雜花一万偈를 강설했다는 점, 넷째 자장이 직접 지시감독해서 창건했다고 하는 통도사의 가람 배치등이다.
이상과 같은 네 가지의 관점에서 보면, 慈藏은 한국불교사에 있어 최초로 『華嚴經』을 이해했인 華嚴思想家임과 동시에 화엄신앙者였다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를 한국 화엄의 初祖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국화엄의 初祖라고 하는 문구의 내용은 한국화엄의 學派나 宗派의 初祖라는 뜻이 아니다. 華嚴經 思想과 華嚴經 信仰, 즉 思想과 信仰을 처음 傳한 조사라는 뜻이다.
본고에서는 앞에서 말한 네가지 문제에 대해 논술함으로 해서, 첫째 慈藏은 持戒者라기보다는 지극한 支殊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