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慈藏의 文殊信行 硏究
- 주제慈藏의 文殊信行 硏究
- 시대신라시대
- 저자정 병 조
목차
위로 가기 慈藏의 文殊信行 硏究정 병 조
1. 머리글
2. 문수신행(文殊信行)의 패턴
1) 전거경전(典據經典)
2) 문수보살의 상징
3) 문수와 보현
3. 자장(慈藏)의 문수신행(文殊信行)
1) 자장과 문수보살
2) 오대산신행과 문수예참
3) 신라 문수영험(文殊靈驗)의 특징
4. 맺는말
상세소개
위로 가기이 글은 신라 문수신행(文殊信行)의 연원(淵源)과 발전에서 나타난 자장(滋藏)의 사상적 기여를 밝히는 데 두고자 한다. 또 초기 구법승으로서 자장의 중국 내 행적과 중국불교에 끼친 그의 사상적 업적을 정의하고자 한다. 자장 이전의 구법승으로서는 원광(圓光)・지명(智明) 등이 있었지만 가장 탁월한 행적을 나타낸 이가 바로 자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신라의 불교 사상사에는 아직도 해명을 요하는 산적한 문제 들이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어는 특정인물은 시대정신의 소산일 뿐만 아니라 그 흐름의 계도적(啓導的) 역할을 담당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신라불교의 초기 즉 5세기에서 7세기에 이르는 이백 여년은 이를테면 신라불교사상의 맹아기(萌芽期)였다고 볼 수있다. 비약적인 정복전쟁의 와중에서 국민의 정신적 구심점이 필요하였고, 더구나 왕실과 백성의 정신적 공감대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였다. 우리는 이 초기의 신라불교 전개에서 이차돈(異次頓)․법공(法空, 法興王)․아도(阿道)․묵호자(墨胡子) 등 몇몇 개척자 불교인들의 활약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사상적인 면에서 볼 때 불교의 초석(礎石) 을 다진 이들은 그보다 한 세기 후에 활약했던 명관(明觀)․ 지명(智明)․원광(圓光)․자장(慈藏) 등이었다고 평가할 수있다. 특히 자장은 중국 유학후 승통(僧統)의 위치에서 신라 불교 승니(僧尼)의 기강을 바로 잡은 율사(律師)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자장은 엄밀한 의미로 말하면 화엄학(華嚴學) 에 바탕을 둔 호법적(護法的) 기풍의 사상가였다고 평가될수 있다. 그의 사상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문수신행이었다. 그는 중국 유학 당시 문수보살로부터 범게(梵 偈)를 전수받았을 뿐 아니라 그 친견을 간구하였던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의 비극적 최후에 관한 점도 단순히 평면적으로 해석될 성격은 아니라고 본다.
본 논문에서는 우선 문수신행의 특징과 그 신라적 전개를 논술코자 한다. 대승불전의 보살은 모두 상징적 존재이다. 특히 문수의 경우 지혜(智慧)를 대변한다. 지혜를 본질로 하고 무애(無碍)의 실천행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문수(文殊)는 보현(普賢)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