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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慈藏의 根本敎學思想

  • 주제법상교학의 연찬을 중심으로
  • 시대신라시대
  • 저자X
목차
위로 가기 慈藏의 根本敎學思想
법상교학의 연찬을 중심으로
머리말
Ⅰ. 攝大乘論의 受學
Ⅱ. 戒律章疏로 미루어 본 敎學思想
1. 四分律疏와 한국의 律學
2. 菩薩戒本의 내용
Ⅲ. 現傳章疏에 나타난 敎學思想
맺는말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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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삼국 중에서 신라가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인 것은, 그 국민성이 자주적 이고 또한 민간신앙이 강하여 그것을 수용하는데 있어서 마찰과 저항이 컸던 것이 원인 이었다. 그렇지만 이차돈의 순교로 법흥왕 때에 불교가 공인된 뒤에는 모든 국민들이 이에 큰 관심을 가지며 신앙하고 생활화해서 국학의 발전과 함께 민족의 흥성까지도 도모 하게 되었으니, 이러한 현상은 문무왕때에 삼국통일을 이루기 100여년 전부터 특히 강하게 나타났었다. 즉 원광이 승려의 입장이었지만 수 나라에 청병할 때에 왕명으로 乞師表 를 써준다거나 귀산과 추항 두 화랑도에게 ‘臨戰無退’를 포함한 ‘세속오계’를 설한다든지, 의상이 智嚴의 수제자이지만 그의 몰후 그 자리를 法藏에게 물려주고 급히 신라로 귀국한 것은, 당 나라가 신라를 침략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사전에 알고 이를 본국에 알리기 위함 등에서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활동 중에서도 선덕여왕 때(631~637)에는 불교가 점차로 일반 대중 속으로 퍼졌는데, 그 이전에는 불교가 귀족불교, 학문의 불교, 수입된 종교였으나 이 때부터는 국민과 민중의 불교, 실천의 불교, 동화된 불교로 된 것이다. 이렇게 불교를 교묘하게 포교해서 민중의 마음 속에 용해시키고, 엄격한 규율로 승단의 기강을 바로잡으면서 탁월한 식견으로 국가의 정치외교에 공헌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慈藏律師이다.

자장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계율을 생활에 밀접하게 정착시키고 또한 이를 적극적 으로 보급하기 위하여 通度寺에 金剛戒壇을 설치하는 등, 이의 실천을 위해서는 목숨까 지도 바칠 결심을 하였던 그였기 때문에 율사라고 불렀다. 그리하던 그가 본고장의 율법을 연학하고, 불교인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지혜의 화신인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해서 중국에 갔는데, 마침내 淸凉(五臺)山에서 이를 참배하고 사리와 가사 등을 감득했다는 것이다. 그 뒤에 귀국해서는 국내 승니의 사회적인 지위향상과 불교사상의 정립으로 이윽고 불교가 국가사상의 주축으로 자리를 잡게 했으며, 오대산에 문수도량을 설정해서 국토장엄과 佛緣國土思想에 입각한 호국불교를 고취하여 국운의 융성을 기도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자기 집을 元寧寺로 개수하여 落成法會를 배풀 때에는 화엄경을 강설해서 53선지식의 감응을 받았다는 사실 등에 의하여, 흔히 자장의 중심사상을 율학과 화엄사 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장이 당 나라에 갔을 당시에 그 지역에서는 대승불교 사상인 攝大乘論에관한 연구가 한창이었기 때문에 자장도 또한 이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며, 더구나 그가 본국으로 돌아와서는 관중에서 한 때에 섭대승론을 강의했다고 함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시피 그의 敎學思想이 단순히 율학과 화엄사상에 그치고 있지 않음을 능히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황룡사에서 菩薩戒本을 강설했다고 했는데, 이는 法相 宗의 소의경전인 瑜伽師地論과 관련이 깊으므로 자장의 지금까지의 교학사상을 한층넓혀서 통화불교적인 관점에서 이를 고찰코자 하며, 특히 이들 두 사실의 공통이념인 法 相敎學思想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살펴 보고자 하는 것이 본 논문의 주안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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