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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五臺山信仰의 성립과 전개
- 주제한국 五臺山信仰의 성립과 전개
- 시대현대시대
- 저자염 중 섭(자 현) 지도교수 윤 선 태
목차
위로 가기 한국 五臺山信仰의 성립과 전개염 중 섭(자 현)
지도교수 윤 선 태
Ⅰ. 序論
1. 연구목적
2. 연구범위와 방법
Ⅱ. 자장의 입당목적으로서의 오대산과 입당연도의 문제·
1. 자장관련 자료의 특징과 문제점
1) 자장의 불교적인 특징과 관련자료
2) 두 자료군의 특징과 차이점
2. 입당목적으로서의 장안과 오대산
1) 입당목적의 타당성 검토
2) 입당목적의 변화 이유
3. 입당연도의 차이와 타당성
1) 입당연도의 관련기록
2) 636년 설의 대두 이유에 대한 타당성
4. 중국오대산행의 문제점과 타당성
1) 불사리와 중국오대산의 당위성
2) ‘太和’라는 명칭에 입각한 타당성
Ⅲ. 자장의 귀국 후 행보와 한국오대산
1. 선덕왕과 계율을 통한 교단정비
1) 자장과 선덕왕
2) 선덕왕의 종교정책과 자장의 역할
2. 오대산행의 의미와 문수신앙
1) 자장 오대산행의 타당성
2) 한국오대산의 개창
3) 명주에서의 비극적 열반
Ⅳ. 보천과 효명의 오대신앙 정립
1. 오대산 은거와 종교체험
1) 보천과 효명의 오대산 은거
2) 보천과 효명의 오대산 정착
3) 보천과 효명의 종교체험
2. 오대신앙의 완성과 의의
1) 오대신앙의 구조와 특징
2) 하원의 문수갑사와 월정사
Ⅴ. 한국 오대산신앙의 요청 이유와 전개
1. 오대산신앙의 요청이유
1) 오대산신앙의 불교적인 요청 이유
2) 오대산신앙의 정치적인 요청 이유
2. 오대산신앙의 전개
1) 신효거사와 신의두타를 통한 변용
2) 고려의 오대산신앙과 고려불교에 끼친 영향
Ⅵ. 結論
상세소개
위로 가기慈藏은 圓光과 더불어 中古時代 불교를 대표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승려이다. 이는 자장 에 대한 자료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자장의 ‘戒律’과 ‘문수신앙’ 및 ‘비조격 인물의 특수성’은, 자장이 『三國遺事』를 통틀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승려가 되도록 한다. 실제로 『삼국유사』에서 살펴지는 자장의 등장빈도나 위상은, 한국불 교를 대표하는 元曉나 義湘(相)을 능가한다. 이는 한국불교에서 자장이 차지하는 위치를 단적으로 나타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장과 관련된 두 자료군인 ‘중국자료’와 ‘한국자료’ 사이에는 커다란 이견이 존재하고 주목된다. 먼저 두 자료군을 간략히 도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자장에 대한 중국자료의 인식은, 자장 當代에 道宣에 의해서 기록된 『續高僧傳』의 「慈 藏傳」의 관점으로 통일되어 있다. 즉 도선 이외의 중국자료들은 도선의 기록을 축약한 정 도에 그친다. 그러므로 중국자료는 도선의 「자장전」과 이를 보충해 줄 수 있는 같은 도선 찬술의 「法常傳」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도선의 기록이 주목되는 것은, 長安 終南山에서 자장과 직접 교류한 인물이며 이것이 자장 생존시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이는 매우 높은 신 뢰도를 확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자료와 같은 경우는 『삼국유사』 「慈藏定律」조가 대표적이다. 撰者인 일연(1206∼ 1289)은 선행하는 古傳과 鄕言으로된 자료들을 종합해서, 「자장정율」을 완성한 것으로 판 단된다. 이는 1307년의 『五臺山事跡記』 「奉安舍利開建寺庵第一祖師傳記(이후 제1조사전 기)」에서 閔漬(1248∼1326)가 자장과 관련된 향언의 기록들을 한문으로 재편집하는 것을 통해서 인식해 볼 수가 있다. 즉 한국자료는 자장과 관련된 고기와 향언들이 일연과 민지 에 의해서 한문으로 재편집되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 872년의 <皇龍寺刹柱本紀>와 『三國 史記』가 부분적이지만 중요한 자료이다. 梵海의 『東師列傳』은 『삼국유사』와 1676년의 琵瑟山 龍淵寺 <如來舍利碑>의 내용이 섞여 있어 자장과 관련해서는 다소 혼란스럽다. 또 『通度寺誌』와 같은 경우는 후대에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짜깁기 된 것으로, 참고자료 는 될 수가 있어도 그 이상의 가치는 없다. 즉 자장관련 한국자료는 「자장정율」과 「제1 조사전기」가 가장 중요한 자료인 것이다. 중국자료와 한국자료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크게 4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자장의 入唐목적이 장안의 선진불교에 대한 교류냐, 중국오대산의 문수친견이 냐에 대한 것. 둘째 자장의 입당연도가 善德(女)王 5년(貞觀 10년)인 636년이냐, 7년(貞觀 12 년)인 638년이냐에 대한 것. 셋째는 자장이 귀국 직후 경주로 왔느냐, 한국오대산에 갔느냐 에 대한 것. 마지막 넷째는 자장의 열반이 溟州에서 이루어졌느냐에 대한 것이다. 넷째 부분 은 도선의 「자장전」 같은 경우 자장 생존시의 기록이기 때문에 자장의 최후에 대해서는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는 한국자료에 대한 타당성의 문제라고 하겠다. 이 중 첫째와 둘째는 상호 연결될 것이므로 묶어서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 셋째와 넷째 역시 같은 명주지역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하나로 묶어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중국자 료와 한국자료의 4가지 차이점은 실질적으로는 ‘자장의 입당목적과 연도’, 그리고 ‘자장의 명 주지역 방문’이라는 2가지로 크게 축약해 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