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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五臺山史庫의 운영
- 주제조선후기 五臺山史庫의 운영
- 시대조선시대
- 저자강문식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
목차
위로 가기 조선후기 五臺山史庫의 운영강문식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
Ⅰ. 머리말
Ⅱ. 조선 정부의 오대산사고 운영
1. 사고 건물의 관리
2. 소장 서적의 관리: 曝曬
Ⅲ. 사고 守直의 규정과 실제
1. 사고 參奉
2. 수직 僧徒와 수호군
Ⅳ. 맺음말
상세소개
위로 가기史庫는 고려·조선시대에 국가의 중요 서적들을 보존·관리하던 서고였다. 조선시대 의 사고는 중앙의 春秋館史庫와 지방의 外史庫로 구분되었다. 조선전기에 지방의 중 심지에 세워졌던 외사고는 임진왜란 이후 보다 안전한 장서 보존을 위해 강화도와 봉 화 태백산, 영변 묘향산(후에 무주 적상산으로 이전), 강릉 오대산 등지에 설치되었 고, 그에 따라 중앙의 춘추관사고와 함께 5사고 체제가 성립되었다. 사고는 조선시대 국가 서적 관리의 중심 기구였다는 점에서 일찍부터 연구자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사고와 관련된 기존 연구들을 검토해 보면, 사고의 연혁 및 각 사고지의 현황을 정리한 『史庫址調査報告書』(국사편찬위원회, 1986)를 제외하 면, 대부분 사고에 소장된 서적들, 특히 『조선왕조실록』의 봉안 및 소장 상황에 관심 의 초점이 맞추어졌다. 반면, 조선 정부의 사고 운영에 대해서는 피상적인 이해에 머 물러 있을 뿐 아직까지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조선후기 춘추관사고 소장 서적들은 반란이나 궁궐의 화재 등으로 인해 대다수가 소실되었지만, 지방 외사고의 장서들은 일제강점기에 서울로 이관·통합될 때까지 온 전하게 보존·관리되었다. 이는 조선 정부의 외사고 관리가 충실하게 이루어졌기 때문 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후기 외사고 서적 관리의 실상을 보다 깊이 이 해하기 위해서는 사고의 운영에 관한 내용들이 반드시 검토되어야 한다. 그런데 4곳 의 외사고는, 운영의 기본 원칙은 동일했지만, 실제의 관리·운영에서는 각 사고가 처 한 환경과 상황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특징적 면모를 보였다. 따라서 하나의 논문 에서 사고 4곳을 모두 다루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사고 하나하나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에 이 글에서는 강릉에 있던 오대산사고를 우선 대상으로 하여 사고 운영과 관리의 실상을 검토하고자 한다. 먼저 Ⅱ장에서는 조선 정부의 오대산사고 운영 실태를 사고 건물의 관리와 소장 장서의 관리라는 두 측면으로 나누어 정리할 것이다. 이어 Ⅲ장에서는 평상시에 오대산사고 수직을 담당했던 사고 참봉, 수직 승도, 수호군 등의 운영 규정들을 검토한 다음, 이 규정들이 현실에서는 어떻게 적용되었으며 그 과정에 서 나타난 문제점과 해결책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