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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유람기록을 통해 본 오대산 상원사

  • 주제오대산 상원사 진여원과 조선시대 불교조각 학술세미나
  • 시대신라시대
  • 저자이경순(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목차
위로 가기 조선 후기 유람기록을 통해 본 오대산 상원사
이경순(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Ⅰ. 머리말
Ⅱ. 조선 후기 오대산 유람과 불교
Ⅲ. 유산기 속 상원사
Ⅳ. 맺음말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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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상원사는 한국의 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신라시대로부터 고려 말, 조선시대를 거쳐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오대산의 신앙과 역사적 사건, 고승의 행적이 지속되어온 사찰이기 때문이다. 상원사는 다양한 문헌 사료와 유물들을 보유해왔고 그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이어져왔다. 특히 상원사 관련 연구는 많은 사료가 남아있는 조선 전기에 집중되었다. 조선의 7대 국왕으로 호불 군주였던 세조에 의한 중창, 이후 원당 지정과 보호조치가 있었고 목조문수보살상과 같은 조선 전기 불교예술을 대표하는 불상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조선 전기에 비해 조선 후기 상원사의 역사와 위상에 대한 구체적 연구는 많지 않다. 조선 전기에 비해 알려진 사료가 많지 않고 관심도 적었다. 최근에서야 상원사가 조선 후기까지 왕실의 원당으로서 기능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조선 후기의 오대산 유람기록이 번역되고 해제도 이루어졌다.  이 글에서는 조선 후기 상원사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사료로서, 산문으로 쓰인 오대산 유산기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특정 시기의 역사적 사건이나 장소를 파악하는 자료로서 유산기와 같은 여행 기록은 현장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갖지 못한, 외지의 여행자에 의한 피상적 관찰의 결과물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하지만 여행기록은 장소와 사람에 대한 시간성과 현장성을 담지한 사료로서 의미가 있다. 공적인 사료가 보여주지 못하는 생생한 목격담이나 실제로 오간 사적인 대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던 사람들의 일상적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조선 후기에 작성된 오대산 유람기록은 여러 편 남아있다. 이것은 조선 후기 산수 유람의 유행을 반영한다. 조선 후기 유람기록에서 상원사는 월정사와 더불어 오대산 유람에서 반드시 실견할 장소로 거의 모든 유산기에 수록되었다. 그만큼 상원사는 오대산을 대표하는 유람지였고 중시된 장소였다. 이 글은 여러 유람기록을 통해 조선 후기 상원사의 모습을 상상하고 복원해보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이를 위해 조선 후기 오대산 유람기록의 종류와 유산기에 나타난 오대산 불교, 상원사의 면모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조선 후기 유람자들의 눈에 비춰진 상원사의 모습과 변화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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