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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영산전 소조상의 양식적 특징
- 주제오대산 상원사 진여원과 조선시대 불교조각 학술세미나
- 시대조선시대
- 저자이분희(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상세소개
위로 가기우리나라에서는 고려에서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나한신앙이 지속적으로 전개 되어왔다. 특히 고려시대와 조선전기시대의 나한신앙은 왕실과 집권층의 전폭적인 지지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왕실 중심의 나한신앙은 복을 구하고 국난의 극복에서부터 무병장수와 가뭄의 극복, 극락왕생 등 발원 내용이 매우 다양했다.
중국에서는 당말 오대(唐末五代)에 선종의 흥기와 더불어 조사(祖師)숭배가 성행하면서 조사와 나한을 동일시하고, 승려의 모습을 한 나한상을 조성하여 조사 처럼 모셔지는 것이 유행하였다. 한국의 조선전기에도 이러한 조사 숭배신앙이 고조되었고, 왕실의 후원하에 지공과 나옹의 후예들은 그들의 법통을 강조하기 위해 나한신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조선전기 시기에 오대산 상원사에도 나한이 주요 신앙대상으로 모셔졌는데, 1466년 상원사 중건시 나한전을 건립하였 다는 기록과. 이후에도 나한전이 계속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시기인가 상원사 영산전에 봉안되어 있던 나한상이 소실됨에 따라 1886년에 경북 예천 운복사에서 상원사로 현재 봉안된 상들이 이안되었는데, 이는 왕실의 내탕금으로 불사가 이루어진 것으로, 19세기까지 상원사가 왕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던 사실을 알려준다.
현재 사찰에 봉안된 대부분의 나한상은 17세기에 들어서면서 1624년 순천 송광사 나한상을 시작으로 조선 후기에 조성된 100여 건의 나한상이다. 아직까지 조선 전기의 나한상의 제작 연대가 밝혀진 예는 드물다. 조선전기의 나한상은 오백나한상으로는 영월 창령사 <석조오백나한상>, 나주 불회사 <석조오백나한상>이, 기년작으로는 <정덕(正德)11年’명 실상사 서진암 석조나한상>(1516년) 뿐이다.
16나한상의 예로는 남양주 흥국사 16나한상에서 1650년 중수기록이 발견되어 조성시대를 조선전기까지 올려볼 수 있으며, 이와 비교하여 예천 용문사 나한상, 구미 대둔사, 포항 보경사 나한상들이 17세기 이전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유추되고 있는 정도이다.
이처럼 조선전기에 조성된 나한상의 사례가 귀한 사정에서, 상원사 영상전 봉안 소조상은 정밀조사를 통해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소조상들은 조선전기 불상 양식을 띠고 있는 모습과 더불어, 최근에 제11존자상의 복장에서 ‘수구다라니(隨求曼茶羅陀羅尼)’(1467년)가 발견되어 조성 연대를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 글은 조선 전기 나한상 연구의 공백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되는 상원사 영산전 소조상들을 대상으로, 소조상의 현황과 복장유물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 이후 소조상의 양식을 분석하여 편년을 정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