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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중대 사자암 불교회화 연구

  • 주제오대산 중대 적멸보궁 학술세미나
  • 시대현대시대
  • 저자정진희(국가유산청 문화재감정관실)
목차
위로 가기 오대산 중대 사자암 불교회화 연구
정진희(국가유산청 문화재감정관실)
Ⅰ. 머리말
Ⅱ. 오대산 적멸보궁(寂滅寶宮)과 중대 사자암(獅子庵)
Ⅲ. 중대 사자암 불화의 현황
Ⅳ. 중대 사자암 불화의 조성 배경
Ⅴ. 중대 사자암 불화의 제작자와 도상적 특징
Ⅵ. 맺음말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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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가장 중심에 자리한 중대 사자암은 월정사의 산내 암자 가운데 하나이 다. 신라 자장율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가져와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에 모셨 는데 사자암은 적멸보궁을 관리하고 예불을 올리는 승려가 머무는 암자였다. 사자암이라는 명칭은 자장이 당나라에서 부처님 정골(頂骨) 사리를 사자에 싣고 돌아와 오랫동안 그곳에 주석하였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이 논고에서 살펴볼 중대 사자암 불화는 <석가여래회도(釋迦如來會圖)>와 <신 중도(神衆圖)> 2점으로 현재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조선 후기 불화의 조성은 불상의 중수 또는 개금불사를 진행하면서 함께 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자암 불화 역시 같은 사례에 속한다. 사자암에서는 1894년 1월 초 목조 비로자나불좌상을 중수하여 향각(香閣)에 모시는 불사를 진행했는데 이때 초청되었던 화승들에 의해 그해 2월 비로자나불상의 후불도(後佛圖)로 사용될 상단(上壇)불화 1점과 중단(中壇)에 모실 신중도 1점이 함께 제작되었다.

조선 후기 불화 제작의 인력 구성은 같은 법맥을 따르는 승려 문중 내에서 필요한 인원을 충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근대기가 되면 문중이라는 인력 구성의 범주를 벗어나 같이 했던 화업(畫業)을 인연으로 형성된 화맥(畵脈)을 따르는 개방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그들은 범본이 되는 불화초(佛畫草)를 공유하며 다양한 변용을 통해 화면을 구성했는데 이는 사자암 불화에서도 보이는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그림의 제작을 후원했던 시주층이 오대산 주변에 거주하는 강원도 지역민이 아닌 왕실 관련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어 왕실 원당이었던 사자암의 역사 성을 보여준다는 점 역시 이 불화들이 갖는 또 다른 의미라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오대산 중대 사자암에서 조성한 불화 <석가여래회도>와 <신중 도>를 주제 삼아 작품을 고찰하고자 한다. 먼저 불화의 현황을 알아보고 나아가 당시 불화를 조성했던 배경과 함께 제작을 맡았던 화승을 고찰해 19세기 말 지방 사찰에서 진행된 왕실발원 불화의 성격과 제작자의 특징을 도출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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